정체성을 흔드는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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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지난 세월에 했던 실수를 다시 하게 됩니다. 다윗의 실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자 하시는지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약속을 붙잡지 못하면 타협을 하게 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약속을 붙잡지 못하면 타협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제 본문에서 사울을 살려주고 다윗 자신도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선택은 믿음 있는 사람다웠고 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또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다윗의 믿음이나 소명의식이 점점 더 발전하는 듯 보였는데 이전에 놉에 들어갔던 시절로 돌아갑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피하게 된 이야기가 오늘 나옵니다. 1절을 보시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라고 나옵니다. 다윗이 그동안 사울에게 쫒기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시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도 다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던 그 소명이 있습니다. 사울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던 체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윗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언젠가 잡히겠다고 생각합니다. 여태 하나님의 은혜를 그냥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고 사울의 손에 붙잡힐 까봐 블레셋 땅에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지략을 사용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보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언약 백성들을 돌볼 왕이 하나님 없는 세상을 대표하는 블레셋 땅에 넘어가서 사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으로 넘어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신변을 의탁할 수 있겠습니까?
슬프게도 다윗의 이런 생각은 현실적으로는 영 말이 안되는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묘책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즉각 효과가 나타납니다. 4절에 보시면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일단 믿음의 문제를 덮어두고 잠시 자신의 소명과 신앙을 현실과 타협했을 때 겉으로 보기엔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전 같았으면 누군가 다윗의 위치를 제보하면 바로 사울이 쫓아오고 또 다윗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과정이 없어졌습니다. 블레셋 땅에 들어갔더니만 사울이 어쩔 수 없이 쫓아오지 못합니다. 이순간만큼은 다윗이 정말 편했을 것입니다.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사울이 쳐들어오면 간이 조마조마하고 부하들은 사울이 오기만하면 죽여야 한다고 하고 다윗은 또 그 부하들을 설득해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여선 안된다고 하고 이번엔 사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야 하는데 블레셋 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너무나 편합니다. 신앙적인 타협을 하면 이렇게 편합니다. 간단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잊고 소명을 잊고 세상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너무 편합니다. 이렇게 한 번 타협을 하니까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아서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진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데, 이렇게 사는 삶이 너무 귀찮고 피곤하고 어렵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의 법칙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손해도 봐야 합니다. 자존심도 상합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산다고 당장 큰 보상이 떨어지거나 누가 잘했다고 인정해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온갖 유혹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이번에 딱 한 번만 이렇게 넘어가면, 내가 지금 이러더라도 하나님께서 딱 한 번만 넘어가주시면 그러면 내가 편할텐데 나중에 내가 숨 좀 돌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길테니까 이번 딱 한 번만 지나가면 될텐데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무섭게도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신앙적인 타협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그게 효과가 너무 좋습니다. 딱 한 번 불신자처럼 살았는데 세상 사는 게 너무 편합니다. 너무 확실한 유익이 떨어집니다. 효과적입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허무할 정도로 결과가 바로 주어집니다.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타협하면서 살면 바로 얻게 되는 즉각적인 이득과 효과들을 포기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지금 당장 믿음을 지켜봤자 이득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이 비약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원리를 잘 파악해서 아무리 나의 몸을 편하게 해준다고 해도 곤란한 나의 입장을 해결해준다고 해도 절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2- 순간의 타협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순간의 타협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면 타협하게 됩니다. 타협하면 갑자기 불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한 번 타협하고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타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타협은 순간의 미봉책이 아니라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만듭니다. 5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땅 어딘가에 거처를 정해서 숨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하나인 가드에 찾아가서 아기스라는 왕에게 성읍을 하나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시글락이라는 블레셋 성읍에서 눌러 앉아 지내게 됩니다. 6절에 의하면 나중에 이 땅에 유다에게 속하게 됩니다. 시글락에 터를 잡고 머물렀던 다윗의 실수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면서 만회시켜주시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시글락에 머물런던 다윗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한 편 다윗은 마음 한 켠에 뭔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레셋 성읍에 머무르면서 다윗 나름대로의 사역을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에 머물면서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을 칩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던 세력입니다. 이들과 전쟁을 하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혹시나 아말렉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까봐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이방 민족을 치고 아기스에게 보고할 때는 이스라엘 사람을 쳤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기스가 준 성읍에 머물면서 이스라엘 사람을 쳤다고 하면 당장 아기스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사울을 피해 그 안전한 곳에 오래 거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뭔가 죄송하니까 아말렉과 남몰래 전쟁하며 마음의 빚을 갚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울도 피하고 어느 정도 이스라엘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서 다윗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28장 1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하는데 아기스가 그 자리에 다윗과 그 수하들을 합류시키려고 합니다. 그동안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쳤다고 거짓말을 해놨는데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다윗을 참여시키려고 합니다.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겠습니까? 일반 백성이라도 자기 조국을 향해서 칼을 겨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데 다윗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리고 아기스는 이 전쟁을 통해서 다윗을 자기 머리를 지킬 사람으로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기 위해 한 번 타협을 했을 뿐인데 이런 타협이 반복되니까 다윗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대적하는 입장에까지 놓이게 됩니다. 특히 아기스가 그의 머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다윗을 생각한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말하고 뱀의 머리는 사탄의 머리를 말합니다. 다윗은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사탄의 세력인 세상의 왕들의 머리를 부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탄의 머리를 부수는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 왕의 머리를 지켜야 하는 그런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정체성은 복음에 대적하는 세력의 머리를 부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한 번 타협이 시작되니까 복음에 대적하는 세력의 머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역행시킬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일입니다. 사울을 편하게 피하고자 하는 타협이 다윗의 입장을 이렇게까지 끌고 온 것입니다.
(적용) 다윗을 보며 우리는 순간의 타협이 반복이 되고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너무 힘드니까 한 번 타협했는데 한 번 블레셋 땅에 넘어왔는데 시글락 성에 들어갑니다. 또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치고 있다고 보고 합니다. 계속 타협합니다. 좀 미안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아예 버리긴 그러니까 블레셋 땅에 살면서 아말렉 백성을 좀 치긴 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세상과 타협하고 죄와 타협하며 살았던 그 흐름을 바꿀 순 없습니다. 나중엔 세상 왕의 머리를 지키는 불신자가 됩니다. 이렇게 믿음을 타협하는 것은 언젠가 하나님 사역 반대편에 서게 되는 일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는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절대 타협이 없어야 합니다. 한 번 타협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 깐깐하고 고지식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 번의 타협은 세상에 없습니다. 나중에 완전 다른 입장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나약함은 타협이 주는 편안함을 한 번 누리면 절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블레셋 땅에 들어가 사울에게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시글락 땅을 얻고 아기스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거짓말까지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리의 본성을 잘 안다면 타협을 시작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면 우리가 믿음을 제대로 지키며 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결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순간의 유혹에 못이겨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잊고 타협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협의 유혹이 찾아올 때 이 타협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언젠가 우리의 정체성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