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중에 빛나는 복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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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세상의 상황은 우리의 희망을 끊어버린다.
(설명)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상황이 우리의 희망을 다 끊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참 암담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서 왕으로 세우겠다고 한 다윗은 블레셋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가 되어야 할 다윗이 세상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아서 진을 쳤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사울은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너무 두려웠습니다. 사울의 사명은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지키는 것인데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울에게 계시가 내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서 블레셋과 전투를 하면 이길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아야 하는데, 아니면 어떻게 하면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지 방법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셨기 때문에 사울에게 계시가 내려지지 않습니다. 6절을 보시면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구해도 꿈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고 우림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고 선지자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차라리 꾸중이라도 하시고 회개할 여지라도 주셔서 돌파구를 주시면 좋을 텐데 그런 것이 일절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6절에 보면 계시의 수단으로 사울의 꿈, 우림, 선지자가 나오는데 이것은 왕, 제사장,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사울은 왕이고 우림은 제사장의 옷인 에봇에 있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쭐 때 사용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직분자입니다. 이 왕, 선지자, 제사장은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는 직분자입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아라고 하고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구약의 왕, 선지자, 메시아는 임시적인 메시아, 임시적인 그리스도입니다. 완전한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역할을 합니다.
사울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임시적으로 세우신 메시아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메시아가 제 기능을 못해서 오늘 본문 8절에 나온 것처럼 사울이 변장을 해서 엔돌이라는 곳에 있는 신접한 여인에게 점을 치러 갑니다. 9절에 보면 이전에 사울은 점술이 율법에 그릇된 것임을 알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다 멸절 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점술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울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행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궁지에 몰린 사울은 하나님의 징벌적인 침묵에 회개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점술을 의지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점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사울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점술을 행해도 목숨을 보전해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계시를 받기 위해 율법을 어기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세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초대 왕이 이런 심각한 영적인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이스라엘은 굉장히 침체된 상황입니다.
2- 하나님은 메시아의 소망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 가운데 소망이 있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위치를 보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28장 2절까지 다윗이 블레셋 땅에 들어가 그곳에서 이방 왕의 머리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래서 이까지 읽으면 독자들은 긴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메시아의 왕조를 세울 왕으로 부르셨는데 다윗이 이방왕의 머리를 지키는 자가 되면 도대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소망을 주셔야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이런 장면이 나온 이후에 28장 3절부터 장면이 전환됩니다. 다윗의 이야기에서 사울의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만약에 사무엘상이라는 성경이 단순히 사실만 기록했으면 다윗의 이야기를 하다가 끊고 사울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29장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시간 순으로 사건을 이해할 것 같으면 28장 2절까지 읽다가 바로 29장 1절을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의 저자는 다윗이 블레셋에 투신한 이야기 가운데 사울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삽입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에, 세상의 땅에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다윗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다윗을 통해 구원 계획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실수를 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이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메시아의 소망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울에게 심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통해 이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3절에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게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대답합니다.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울이 물어봅니다.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신접한 여인이 대답하길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겉옷은 제사장 겉옷입니다. 사울은 이때 제사장 옷을 입은 노인이 사무엘인 줄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합니다. 12절과 15절을 보면 본문을 읽을 때의 난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여인이 죽은 사무엘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오고, 15절에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기독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시 이 땅으로 오지 못한다고 알 고 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죽었는데 신접한 여인을 통해서 사무엘의 영혼이 ‘강림’ 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본문을 읽을 때 악령이 사무엘로 둔갑을 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도 주일학교 시절에 본 성경 만화책에서 사탄이 뿅 하고 둔갑을 해가지고 사무엘처럼 연기를 한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해도 이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학자들은 이 본문에 나온 사무엘이 사탄이 아니라 사무엘의 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본문에서 악령이 사무엘을 흉내 냈다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신접한 여인이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까지 이 여인이 겪지 못한 뭔가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신접한 자들이 하는 역할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소환하는 강신술을 사용해서 죽은 영혼이 나뭇잎 소리나 바람 소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일을 알려주면 그 자연현상을 해석해서 전달하러 오는 것입니다. 영혼 그 자체를 매개로 해서 말을 전달하는 강신술은 당시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무엘의 영 자체가 등장해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무엘이 하는 말이 악령의 미혹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잘 전달합니다. 선지자 역할을 너무나 잘 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무엘이 무엇이라 합니까? “여호와가 너의 대적이 되셨다. 너의 이웃 다윗에게 나라를 넘길 것이다.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그의 진노를 쏟지 않았고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겠다.” 이 내용은 악령이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좌우지간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악령이 이런 말을 했든 진짜 사무엘의 영이 이런 말을 했든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사울이 이런 메시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계시가 다 닫힌 암울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다윗 왕조가 올 것이라는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영적으로 굉장한 침체기입니다. 기름 부어서 세워지는 직분자들 그러니까 왕, 선지자, 제사장에게 계시가 내려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임시적인 메시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기름 부음 받은 왕인 사울이 무당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니다. 만약에 어떤 선교사님이 어느 나라에 가야 선교가 잘 될지 무당한테 물어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충격입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인 사울이 지금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나라가 어렵고 영적으로 침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 안에서 다윗 왕을 약속하십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아말렉을 몰아내지 않았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지 못한 사울 대신에 새로운 왕을 세우십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을 몰아낼 왕, 메시아를 마련하십니다. 바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 대신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다윗을 통해 더 큰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십니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우리에게 완전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블레셋 아말렉 정도를 멸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의 세력을 뿌리 뽑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어도 참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결코 절망 가운데 계쏙 머물지 않습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이 시대가 사울의 시대처럼 영적으로 침체된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일어나서 성도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울의 시대를 종결시키고 다윗의 시대를 마련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말씀과 교회로 이 시대에 회복의 역사를 가져다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희망의 희박하고 절망 가운데 처한 때를 맞이한다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를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이 악한 세상을 거두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치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