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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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법 없이도 살 사람
인트로: 법 없이도 살 사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 사람은 참 성품이 훌륭하다, 참으로 도덕적인 사람이다 라는 의미로,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참 착한 사람이야.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는 착하고 품성이 좋은 사람에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법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합의입니다. 만약에 법이 없다면 우리는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때, 우리 맘대로 그 사람을 처벌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아서 그 잘못에 대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더 큰 고통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쁜 짓을 했을 때 벌을 줄 수 있고, 사람 사이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거의 모든 국가는 법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워낙 선하고 착하고, 도덕적이라서 그 사람을 보면 나도 본받고 싶어지고, 딱히 누군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할 만한 껀덕지도 없이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법과 같은 제약이 없어도, 자기 자신만의 행동거지나 마음가짐에 대한 규칙을 지키고만 살아도 사회적으로 문제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법 없이 자유를 주는 것이 더 사회에 모범이 될 만 한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마 시대에서의 고발
로마 시대에서의 고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이렇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는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도덕적이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넘어서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세상의 법이 하나님의 법과 다르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6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이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일과 분쟁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서로가 고발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법과 질서를 통해서 “저 사람을 처벌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일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즉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즉 세상의 판사 곧 로마의 재판장들 앞에서 서로를 고발하여 재판을 받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로마 사회는 소송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시대가 2천년 전이었음을 감안해도 소송과 재판이 있다는 사실은 로마가 굉장히 문화, 사회, 그리고 정치적으로 발달한 제국이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소송은 오늘날의 재판처럼 누구나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소송에 참여하는 이들이 평등하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수평적인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황제가 있고 왕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판이 과연 공평했을까요? 오히려 로마에서 일어나는 소송은 소위 엘리트 집단들의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법으로 찍어누르기 위해서 뇌물을 주고 권력으로 압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당시 로마의 재판장들을 불의한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불의의 현장에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발하는 이들은 또다른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 법정에 형제를 세우는 일은 누가 더 돈이 많고 권력이 많느냐를 다투는 일인데, 어찌 형제자매를 법정에 세울 수 있냐고 바울은 거세게 질타를 합니다.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
그럼 대체 누가 로마의 법정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본문말씀 2절과 3절을 보시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야 말로 저 불의한 로마의 재판관들과 세상의 권세잡은 이들의 불의한 재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심지어는 천사 조차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엥? 제가요? 제가 천사도 심판하고 저 사법고시 합격한 판사님들도 제가 심판한다구요? 아니,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왜 제가 그런 일을 해야하고 제가 어떻게 그것을 감당하나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사실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의로운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죄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추악하고 음란한 본성을 가진 그리고 또한 그렇게 수많은 죄를 지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더러운 죄인인 우리에게 “너는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해주십니다. 9-11절을 보시면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저희는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같이 유혹에 넘어지고 넘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재판할 수 있는 자들인 이유는, 세상의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인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래 의로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가하나
12절에 보시면 우리가 잘 아는 조금 유명한 말씀이 나오죠? 함께 읽어볼까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냥 내가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뜻일까요? NRSV 영어 성경에 보면 이 가하다를 lawful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합법적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즉슨 나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어떤 행위든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하심 아래, 허용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행위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 주에 5장을 읽으면서 저희가 음행하는 일에 대해서 보았습니다마는 그런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니 모든지 가능하다면서요? 모든지 허용된다면서 왜 음행과 같은 일들은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모든지 된다면서 이건 안된다고 하는건 모순 아닙니까?
이는 우리가 홀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5-17절을 보실까요?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우리는 자유롭지만 이는 그냥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과 한 영이 된 자로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하신 것 같이 저희가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주혜 전도사님과 결혼한지가 벌써 만으로 3주째가 되어가는 데요, 이주혜 전도사님이 저기 방송실에 계셔서 말씀드리기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여러분들도 결혼 생활을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총각 시절 처녀 시절 때 가지고 있던 자유가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시는 지요? 저도 처음 부임했을때, 제가 오후 예배에서 게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결혼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아, 이전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막 할 수가 없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럼 제가 아무 자유도 없이 속박되어 사는 것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제가 저의 자유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저희 부부가 함께 누리는 자유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다면, 이제는 부부로서 함께 생각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랑 이주혜 전도사가 함께 부부로서 만안교회를 섬기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누나에게는 조카가 둘 있는데요, 이 아이들 사진 올려주는 것 보면 너무 귀엽습니다. 큰애는 5살 남자아이인데 로보트 가지고 노는걸 좋아하구요, 3살 짜리 여자아이인 작은 아이는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희 누나한테 육아에 대해서 물어보면 한숨을 푸우욱 쉬더니, “영화 좀 보려고 하면 이거 해달라고 하고, 수업 준비 하려고 하면 저거 해달라고 하고 출근 준비하려고 하면 밥 달라고 하고 아주 죽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저희 누나는 아이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걸까요? 그런데 큰 아이가 놀다가 “엄마!”하면서 품에 푹 안기면, 제가 여태 봤던 그 어떤 웃음보다도 밝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로서의 누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저희 누나는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저희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죄로부터 구원하심으로 저희가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저희는 세상의 법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저희 멋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 한 영으로서 마치 부부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로서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만의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부가 결혼하여 한 몸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과 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비록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세상에서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유함을 누리고, 또한 그 자유를 방종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책임있는 자유함을 가지고, 세상에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선포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