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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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제사
명절 제사
여러분 얼마 전에 저희가 추석을 지냈었죠? 저도 결혼하고 나서 신혼여행을 갔다가 한국에 돌아온 그 당일에 바로 이주혜 전도사님의 친정 댁에 가서 같이 추석 예배도 드리고 명절 음식도 함께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요. 참 감사한 것이 이주혜 전도사님이나 저나 가족들이 신앙인인 가정이어서 명절에 제사와 관련된 문제가 없이 하나님 안에서 은혜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한 초등학교 1학년 때 까지는 큰집, 그러니까 저의 친할아버지의 형님 되시는 분의 집에 가면 거기는 불교 집안이라서 명절만 되면 그 집안 식구들은 제사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루는 제가 이렇게 보는데, 다른 집안 식구들은 다 앉아 있고, 저희 어머니 혼자만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앉아있는데 엄마만 설거지해?” 저희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주변 어른들 눈치를 보느라 식은 땀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어른들은 제삿상을 준비했으니까 엄마는 설거지만 하는 거야.”
제가 나중에 커서 알아보니까, 저희 부모님이 우상 숭배를 위한 제삿상을 차마 만들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음식 만드는 일을 안하는 대신에 온 집안 식구의 설거지를 그날 홀로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켜야할 순간들
믿음을 지켜야할 순간들
이렇게 여러분, 저희가 살면서 이렇게 믿음을 지켜야할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저희가 고린도전서 8장을 읽었을 때 바울이 이야기했죠. 우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 계시는 줄을 다 아니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되는데,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조상신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죽음 이후에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을 아니까, 사실은 제삿상 차리는 것 자체가 죄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제사를 위한 음식 차리기를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10장은 8장에서 말했던 지식이 있는 자들, 그러니까 “하나님 한 분만 계시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먹어도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한 권면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보는 경고
이스라엘을 통해 보는 경고
1-4절을 보시면, 유대인들의 조상,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묶어서 이야기합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던 일을 2절에서 바울은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모세와 함께 출애굽하면서 구름 기둥과 함께 하고 홍해를 가르며 지나간 일이 마치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내셨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 라고 하는데, 이 프뉴마는 숨결, 바람, 공기와도 동의어입니다. 공기 중에 떠있어야할 구름이 내려와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한 것, 홍해를 가르며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것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와 같다는 것이지요.
또한 3절에 신령한 음식, 즉 만나를 먹고, 4절에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난 신령한 음료, 즉 하나님께서 돌을 지팡으로 쳐서 물을 마시게 한 일이 마치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인 떡과 포도주를 먹은 것과 같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떡과 잔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부터 구원해낸 이스라엘도 똑같이 구름기둥과 홍해로 세례를 받고, 만나와 물을 받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저희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끝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시면 그들 중에 대다수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7-10절을 그냥 한번 슥 읽어보시면 다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백성들이 다 어떻게 됐습니까?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하고, 9절에 보시면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러다가 결국엔 신명기에 이르러서 모두 광야에서 죽고 세대 교체가 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구원받은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하게된 것을 상기시키면서 구원 받은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처럼 이런 일들을 본보기로 삼아서 우리를 깨우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우리가 깨우쳐야할까요?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말씀은 바울이 8장에 등장했던 지식있는 자들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한 분 뿐이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이들이 나중에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즉 “하나님은 한분 뿐이니까 사실 우상에게 절해도 사실은 절하지 않은 거 아닐까?” “사실 우상들의 예배에 참석해도 딱히 문제 없는거 아닐까?”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4절에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에게 이 말씀이 잘 안 와닿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갑자기 여러분들에게 “내일 부터는 새벽예배가 아니라 저기 삼막사에서 새벽예불을 드립니다. 다들 아멘하지말고 나무아미타불하십시오”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저 전도사가 정신이 나갔나”하면서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말은 그냥 우상숭배하지 말라,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라고 되어있는데요, 이는 그냥 하나님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영어 성경으로 보시면 좀더 헬라어 원어에 근접한 번역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이 질투하시도록 도발하겠느냐?”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 7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면서 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냥 단순히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저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관계가 깨지는 일이 발생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행동, 즉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연인 관계, 부부 관계를 생각해보십시오. 어제 주일 말씀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해서 배웠는데, 부부 관계에 있어서 서로를 기쁘게 하는 행동이 아니라 기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면,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관계가 틀어지게 됩니다. 그럼 그 정도가 심한 부부는 외도를 하는 경우들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외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유혹과 시험을 피할 것을 권면합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런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 저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험을 저희에게 내려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쁘신 하나님, 즉 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분 상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겠는데,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24절을 보시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25-30절 까지는 이해타산적으로, 즉 득실을 따져가면서 살지 말고, 나의 유익을 위한 삶 즉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단순히 배려를 잘하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제 오후 예배 때 이주혜 전도사님이 전한 말씀 중에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처럼 행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분명한 목적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33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이것이 여러분,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셔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진리를 보여주신 것처럼, 그 진리로 저희의 삶에 적용해서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그를 통해서 오히려 우상 신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을 항상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저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즉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구원을 받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없고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의 수많은 쾌락과 정욕에 빠져사는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시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