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6 views
Notes
Transcript

장례에 관하여

저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두 분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신지가, 할아버지는 35년 정도,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지요, 그리고 친할머니는 제가 중학생때, 그러니까 한 13년 정도 되었는데요. 원래 두분다 고양시 벽제리라는 곳에 묻혀계셨는데, 지난 주 월요일에 두분의 관을 다시 꺼내서 화장을 하고 제천에 이장을 하게 되어서 제 친가 친척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제가 그 예배를 드리면서 저희 아버지가 짧게 말씀을 전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지난 주에 제가 명절 제사 이야기를 하면서 종가집에 가면 거긴 다 불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제사를 지냈고 부모님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 말씀 전해드린 그날 아버지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가 그 불교집안이었던 종가집도 복음을 받고 지금 교회에서 한 분은 집사님으로 그 자녀들은 청년부에서 열심히 섬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신 것이 제가 6대째 신앙인, 그러니까 저의 아버지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로부터 신앙이 쭉 이어져왔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 분들이 다 믿음이 없는 집안에 시집을 가셔서 집안에 복음을 전해오셨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참 은혜가 많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서 하신 말씀이 저희가 나중에 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무슨 저승에 가서 만난다는 말씀일까요? 한국에서는 장례 예식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어도 어느정도 한국인들의 의식속에는 죽음 이후에 불멸하는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단순한 영혼 불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다시 만난다고 하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신 것처럼, 저희가 육체로, 즉 저희의 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만나자 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고린도교회에서 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도 바울이 그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왜 우리가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는지, 또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

12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아마 유대인들은 사두개인 정도만 제외하면 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다니엘서에서도 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Daniel 12:2 NKRV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그런데 이방인들, 특히 헬라 철학과 문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영혼은 불멸하다고 믿었습니다만 그들이 믿지 않았던 것은 몸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 장에서도 보시면 아덴, 즉 그리스의 아테네에 가서 복음을 전할때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까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우리나라에서도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혼 불멸에 대해서는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몸이 부활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외에는 “저 과학도 상식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라고 조롱당할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몸의 부활을 믿는 유일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본문말씀 3-4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전해 들었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몸의 부활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사실 성경의 모든 것이 다 허무하고 헛된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7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아직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요, 이것이 사실 핵심 포인트입니다.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죄와 사망을 묶어서 설명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는 말씀처럼 죄와 사망은 함께 가는 개념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오늘 본문말씀에 나온 것처럼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사망입니다. 22절에 보시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시면 선악과를 먹게 되었을 경우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한 말씀대로 아담도 하와도 죽었고, 그 이후의 모든 이들이 에녹과 엘리야 정도를 제외하면 다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어기는 것, 즉 죄를 범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아담 이후로는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죽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이를 속죄제물로 해결을 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 그 죄의 삯인 사망을 부여함으로써 그 죄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고, 다시금 죄를 짓지 않게 했다는 것이죠.
아니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화목제물로 드려졌으니,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화목 제물로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믿음으로 죄를 한번 사해주실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죽게된 상태를 해결하지는 못하게 되는 겁니다. 죽음 이후에 무엇인가를 바랄 수 없이, 그냥 끝, 즉 완전한 죽음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죄 때문에 죽는 것, 즉 이 사망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완전한 죽음, 완전한 사망, 완전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의 부활

아니 그럼 왜 여전히 이 세상에는 죽음이 남아있습니까? 저도 제 친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경험했는데, 왜 여전히 우리는 죽음을 경험해야합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죽음은 없다면서요? 여러분 그것은 지금의 썩어 없어질 몸의 죽음인 것이고, 바울이 이야기하는 영원한 생명은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한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42절 말씀을 보시면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라고 이야기합니다. 45-49절 말씀은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데요, 아담은 흙에서 만들어진, 즉 썩어 없어질 몸으로 나왔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신 몸, 즉 썩어 없어지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오신 것처럼, 저희도 지금의 육신은 아담처럼 죽음을 맞지만, 부활의 때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모습처럼 영적인 몸, 신령한 몸, 즉 다시는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몸으로 저희들도 부활의 때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근데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믿는 사람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게 한국어 번역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마치 그리스도인들만 삶을 얻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는데, 영어원문을 보시면 이것은 계속해서 나오는 아담과 예수님의 비교와 함께 보아야합니다. 아담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심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썩지 않는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은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이 부활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만약에 죽으면 끝, 이라고 한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고, 나는 오늘만 살거야 하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처럼 살아도 됩니다. 32절에도 보시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라고 합니다.
근데 그런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의 부활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 을 보시면,
John 5:29 NKRV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러니 여러분 저희는 죄를 도저히 지을래야 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부활 이후에는 애매모호한 중립이 없습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어제 담임목사님이 전하신 말씀대로면, 곡식과 가라지가 나뉘어서 거두어지거나 풀무불에 던져지고, 양떼로써 칭찬을 받거나 염소떼로서 책망을 받거나로 나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저희는 언제나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마지막 절인 58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희보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거 예수 믿어서 뭐하나?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믿거나 믿지 않거나 우리에게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모든 이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저희는 항상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어떤 주님의 일입니까?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그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지금의 썩어질 육신은 죽더라도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여서 다시 만나게 될 믿음의 동역자들을 찾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롱할 지라도, 58절 말씀처럼 여러분의 수고는 주님 안에서 절대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으며, 또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받은 이 구원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