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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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의 추천장
새벽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3장의 말씀을 나눌 때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니까 추천서라는 말이 등장해요. 이게 2,3절에 등장하는 편지랑 같은 말인데 고린도전서와 후서사이에 바울이에 아주 가슴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이야기 되고, 또는 예루살렘에서 고린도교회로 온 율법교사들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아주 저명한 추천장/편지를 가지고 왔어요. 추천장이라는 것이 잘 모르는 사람을 알기위해서 믿을 만한 분의 이름이나 저명한 단체가 추천하는 글을 통해서 그 사람에 대한 어느정도의 신뢰를 갖는 것을 말하죠. 예루살렘 교회는 다른 사람도 아닌 12사도들이 세운교회니 거기서 율법교사들이 그런 추천서를 받아 왔으니 얼마나 말에 힘이 있겠어요. 고린도교회 안에서 복음을 잘 전하고 교회를 튼튼히 세워갔으면 좋았겠지만 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안에 가슴아픈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율법교사들은 추천장을 가지고 와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지만, 추천장이 없이 왔던 바울은 그가 과거에 얼마나 믿는자들을 핍박하고 무슨자격으로 복음을 전하냐고 하면서 그가 거짓사도고 자신들이 진짜 사도라고 말하면서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다보니니 고린도교회가가 잠시 바울과 소원해지는 일이있었지만 이후 다시 바울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바울이 고린교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추천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2절에 당신들이 나의 추천장이라고 말합니다. 표준새번역을보면 조금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요.
고린도후서 3:2–3 (표준새번역)
2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1)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으며, 읽고 있습니다.
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추천장이라 말합니다. 바울은 추천장이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러니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 세워지고 교회를 이루고 다시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쓴다면 그것만큼 강렬한 추천장이 어디있겠어요. 그래서 바울은 바로 당신들이 우리를 증거해주는 믿음의 추천장인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내는 편지라는 멋진 말을 합니다. 계속에서 3절에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으로 써진 것인데 차가운 돌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판에 써져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마음판에 써져있을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편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추천서 즉, 편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잠깐 평일 낮시간에 일은 한적이 있었습니다. 클럽에서 일했는데 바로 헬스클럽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헬스장이다보니까 아주 다양한 분들이 오셨어요. 어느날 회원님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 회원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선생님 혹시 교회다니세요?” 제가 깜짝 놀라서 “네! 저 교회다녀요!”라고 대답하니까 회원님이 “어쩐지 뭔가 분위기가 교회다니시는 분 같았어요.”이러시더라구요. 그말을 듣고 보니 헬스장에 뭔가 권사님, 집사님 같은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학생분들 젊은 청년분들이랑 친해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 교회다녔던 분들이 커서 안나가고 있었던거에요. 대학교가서 바빠서 못나간 분들, 직장생활을 하면서 본 교회랑 떨어져서 아직 교회를 못찾고 있던분들, 코로나라 특수한 상황으로 못나갔다가 그 기간이 길어지니까 더이상 나가기 어려웠던 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본인들도 알고 있어요. 이제 교회 가야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마음까지 오지 못해서 행동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 잘 못나가게 되었다는 이유로 교회에 안나가지 말고 이제 다시 교회에 나가보세요. 시간내서 이렇게 매일 같이 운동오는데 일주일에 한번 가는 교회에 가실 주 있잖아요. 다시한번 가보세요.”라고 권면하니까 안가겠다고 할 줄 알았던 분들이 그 다음주부터 다시 믿음생활을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친구따라 헬스장에 왔던 분들도 같이 운동하며 괜찮아보였는지 함께 교회에 가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그때 부터 함께 신앙에 대한 고민들, 직장과 가정에서 말씀으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무엇인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멋진 추천장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율법으로만 써져 있지않고, 마음판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되고 새언약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리는 복음
살리는 복음
그렇다면 우리가 전하는 그 복음은 어떤 복음일가요?
6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살리는 복음입니다. 죽이는 율법 조문이 아니라 살리는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율법이 대단히 나쁜 것 처럼 말하죠. 7절에도
고린도후서 3:7–8 (NKRV)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율법이 대단히 나쁜 법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 인간에게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이나 오늘이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신데 고통받으라고 나쁜 법을 주시지 않으시잖아요. 율법도 본래는 선한 것이었고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 심판이 선고되었고 죽음이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돌판에 써저 있는 율법조문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영월에서 목회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말씀도 배우고 신앙생활을 하며 컸습니다. 친구들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말씀도 읽고 성경에 대해서 알아가며 컸는데, 어느날 구약을 읽는데 신앙생활이 좀 힘들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구약성경을 읽으면 우상수배 하면 안된다, 뭘 먹으면 안된다~ 뭘 입으면 안된다~ 이때는 하지 말아라~ 저때는 저걸 지켜라~라고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거에요. 왜이렇게 지킬게 많은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뭘 하면 죽는다. 뭘하면 영원히 죽으리라. 그건 범죄니라.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하면 안되는 것들이 진짜 많구나. 그걸 하면 벌을 받는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고 어느날 제가 학교를 갔다가 왔는데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쁜말 쓰면 안되고, 친구 때리면 안되고, 선생님말 잘 들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그렇게 안해 친구들은 참 나쁜애들이야 나중에 하나님께 벌받을꺼야”라고 말하더래요. 그랬더니 엄마가 “하나님 말씀은 이말씀 지키고 저말씀 지켜서 누가 선하고 나쁘다고 나눠서 벌 주려고 있는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을 만나 살리려고 있는 말씀이야. 하나님 말씀안에서 사랑하라고 있는거야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알게된게 아 말씀은 누가 잘못했고 무엇을 지켜야 올바른 사람인 것이라고 잣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있는 것이구나를 알았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해서 잘못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빛되신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전했던 복음은 범죄하여 율법을 어겨서 너 잘못했고, 너 죄인이고를 판단하는 죽게하는 복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딱딱하게 굳어진 돌판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그 복음을 세길 때 죄에서 우리를 살리신 생명의 법이고 그 법에 더 큰 영광 있습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에 더 큰 영광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범조함으로 죽게 되는 율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복음을 알고 담대하게 전하는 새언약의 일꾼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 안에서 수건을 벗자
복음 안에서 수건을 벗자
그러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인데, 모세는 당시 유대인을 좀 안다고 하는 로마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율법에 있어서 ‘모세의 율법/모세 5경’이라는 말처럼 하나님께 친히 십계명과 여러 율법들을 받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스토리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히브리인이지만 왕의 아들처럼 자랐고, 하나님을 만나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하나님을 뵙고 왔는데 피부가 너무 밝은거에요. 피부가 너무 밝으니까 모세가 어떻게 했냐면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때 장차 없어질 것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13절에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렸다고 말합니다. 이 얼굴이 얼마나 빛났으면 출애굽기 34장에서 두려워 보였다라는 표현처럼 빛나는 얼굴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두려워했겠어요.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 모세가 내려오지 않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그런 백성들인데 자칫 자기 얼굴에 나타난 빛 때문에 진짜 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을까봐, 이 빛나는 얼굴은 영원하지 않은 것인데 영원한 것으로 믿어버릴까봐 수건으로얼굴을 가렸버립니다.
그리고 이 가리워진 수건은 빛나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15절에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오늘까지 율법을 읽는 그들의 마음을 덮었다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영광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믿는 완고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랬습니다. 율법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6절에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수건을 벗어, 율법의 속박으로 벗어나는 참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께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결론
결론
혹시 우리 마음에도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이 덮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 언약으로 말미암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모세처럼 영원하지 않는것을 영원하다고 오해받을까봐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12절에 담대히 그것을 당당하게 들어낼 수 있는 살리는 복음. 그 안에서 정죄와 구속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거울로 얼굴을 보는 것 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바울의 말처럼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새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처럼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이 자리에서 함께 기도로 그 사명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한 것 처럼 저희를 그리스도의 편지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차가운 돌판에 새기지 않고 마음판에 새겨져서 잘잘못을 가리며 말씀으로 정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 되어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능히 복음전하는 일을 감당하는 자 되게 하여주옵소서.
은혜의 주님, 저희 마음에도 혹시 진리를 바로 못 보게 하는 수건이 덮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이 새벽 율법의 속박으로 부터 참 자유를 주신 주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그리스도의 편지 되게 하옵소서.
이 새벽의 자리에 가져온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주님 들어주시고 역사하여주셔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되게 하시고, 주님의 반석되는 만안교회 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