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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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419장, 412장, 갈라디아서서 4장 읽기
드라마 제벌들이 상속자가 되기 위해 싸우는 모습
오늘 4장의 말씀은 어제 보았던 갈라디아서서 3장의 말씀과 이어지는 장입니다. 갈라디아서서 4장도 3장과 같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상속자
진정한 상속자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3장 24절에 율법의 역할을 바울이 정리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기능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했었죠. 부정적이게는 죄 아래에서 있던 인간의 모습들을 들어내 주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율법 자체는 선하지만 온 인류에게 유죄는 선고하는 모습이어습니다.
이와 동시에 율법은 초등교사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서 4장에 와서 율법을 초등교사와 같이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2절에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율법이 우리의 후견인 혹은 청지기와 같다라고 표현을 사용합니다. 1절에보면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렸을 동안에는 후견인과 청지기의 보호와 통제아래 있는 것 처럼 우리도 율법의 통제와 보호아래 있음을 설명합니다. 예전에는 성인이나 상속자가 되기전까지 아버지가 의뢰한 후견인, 청지기 밑에 있었어야 했어요. 재산권을 관리해주는 청지기 후견인들이 있었는데, 미성년으로 취급되거나 상속자가 되지 않으면 재산을 소유하거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는데 그 점에서 종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율법아래에서 종과 다름이 없이 살아왔어요. 율법이 있어서 우리의 욕망과 본성대로 살지 않고 법을 지키며 살아올 수 있었는데~~ 그런데 죄를 안 지으려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통제와 보호아래에서 있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두려움이었어요.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는 두려움속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사는 삶은 종과 같은 두려움 삶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즉, 상속자가 되는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후견이, 청직기 였던 율법 아래에서의 삶을 마치고 자녀의 삶을, 상속자의 삶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3장에서 의롭게 여겨주셔서 우리가 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변화된 삶을 살아갔다면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이야기하는데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더이상 두려워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꺼이 순종하는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여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가 아빠 아버지 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데 바로 아빠입니다. 이것은 아바인데 예수님이 쓰셨던 생활언어 아람어 입니다. 당시에 헬라어를 쓰던 갈라디아인들에게 예수님이 쓰셨던 아바라는 단어를 아려준 것인데 왜 하필 아빠 아버지라고 했을까요?
성경을 보면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신 분이 예수님이셨어요. 예수님은 그전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주시는 아빠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이땅에 여자에게 나시고 율법 아래에 있으셨지만 아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시면서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완성하시어 우리를 율법 아래에서 건지시는 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게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리셨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이제 상속자로서 하나니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율법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것이 맞아보여서 마음이 흔들렸던 이들에게 바울은 더이상 우리가 종이 아니라 상속자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친밀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저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무르며 그 친밀함 속으로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한다.
8절부터 20절까지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걱정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을 만났을때 ~~ 바울이 건실하고 누가봐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서 복받고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이 어니었습니다. 간질(뇌전증)과 눈병을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육체의 질병이 있었어요. 그런데 14절에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여러분들이 나를 업신여기지 않고 영접한 것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할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주려했고 저도 여러분을 향한 마음이 그러합니다.
그러면서 17절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그들이 즉,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신분에서, 다시 종이 되는 신분으로 바꾸는 것이 되니 좋은 뜻이 아니었어요. 그다음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낸다는 것 ~~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다른 복음은 결국, 여러분을 그들의 종이 되게 할 것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9절에 다시 고린도로 가서 해산의 고통을 또다시 격더라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를 수 있다면 그 어려움을 겪겠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복음의 진리를 끝까지 전하고 하는지 너무 느껴졌어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니까 더 잘되고, 복음을 전한다고 떠나면 가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날로날로 일어나지 않았어요.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해산의 수고 라는 표현처럼 어마어마한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희도 복음을 듣고 믿는 자로서 복음을 전할때 사도바울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할 줄 믿습니다. 오늘 바울 처럼 저희도 끝까지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쫓으라!
내쫓으라!
바울은 이어서 율법과 복음을 예표하는 구약의 인물들을 예로 듭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었던 이스마엘과 이삭을 예로 삼습니다. 이스마엘은 하갈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노력해서 낳은 아들이에요. 이스마엘을 통해서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율법을 믿어서 구원을 받으려는 모습을 이스마엘을 통해 보여줍니다.
반대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양수가 끊어져서 더이상 출산을 할 수 없었을 때 육체의 기능이 다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으로 생긴 아들입니다. 바울은 약속과 은혜로 태어난 이삭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님으로 복음의 구원받은 복음 예표로 이삭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창세기기 21 장의 이야기를 비유로 설명하는데 9절에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여기에서 놀린다는 것은 조롱한다는 말인데 이것을 보고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고민하여 하나님께 기도할때도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내 쫓으십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오늘 본문 29절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즉, 율법을 통해 구원을 받는 거짓 교사들/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믿는 바울과 성도들을 조롱하고 괴롭하고 있다고 이삭과 이스마엘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스마엘과 하갈이 쫓겨난 것 처럼 너희도 다른복음을 전하는 거짓교사를 내쫓으라고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고등학교때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반이 다른 한 친구가 조금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반도 다르고 크게 아는 친구가 아니여서 저 멀리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독교 동아리를 따로 했었는데 거기에 그 친구가 오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몇주 함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도하는 가운데 그 친구도 하나님의 귀한 딸이여서 이렇게 그냥 두는 건 믿는 사람으로 할게 아니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 더 나쁜 말을 하는거예요. 그런데 가만 듣고보니 이 친구들과 이런 말을 나누는게 과연 좋은 일일까? 저도 친구를 잃게 될까봐 함께 말을 나누는 친구들이 사라질까지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 거부할 수 없는 저 친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으니까 잘 어울리지 못했던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또 다른 교우관계를 만들어 갔읍니다.
그러니까 참 신기하게도 더 좋은 친구들이 붙더라구요. 계속 안좋게 보고 나쁘게 말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더 긍정적이게 자신의 꿈을 가지고 신앙생활도하고 학교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내 쫓으라~ 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다른복음, 즉 우리 안에 “복음”이 아닌 것을 내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것들 네 공로와 열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삶을 내쫓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한주를 마루리 하며 나오는 금요일 새벽, 기도의 자리로 저희를 이끌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율법 아래에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불르며 자녀로서 누리는 친밀함을 저희도 회복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했던 친밀함 처럼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 안에서 누리는 온전한 자유와 자녀로서의 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사도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을 내 쫓으라고 말한 것 처럼,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나의 공로와 열심을 우선시 하는 이 마음을 내쫓습니다. 복음의 진리위에 서서 복음이 아닌것을 구별하여 내쫓을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 올 한해도 두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잘 정리하는 가운데 아름답게 열매맺게 하시고, 지나온 날을 감사로 고백하며 특별히 입을 열어 주님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를 친밀함을 결험하는 시간되게 인도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