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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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424, 423장

지난주 말씀 설명

설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도 제천 영원에 다녀왔는데 이번에 눈이 엄청 많이 와서 오고가는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설차가 전복될 정도로 눈이 참 많이 왔는데 그럼에도 가족들의 얼굴을 본다는게 너무 좋더라구요.
일주일 만에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는데, 지난 야고보서 내용을 잠깐 다시 돌아보면 예수님의 첫째 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보고 예루살렘교회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 특별히 유대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실천과 행함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믿는 구원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고 믿지 않는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니까 구원 받은 자로서 삶과 행위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얻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선생

그리고 나서 3장의 말씀인데 3장의 제목을 보면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라고 나옵니다.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점,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라는 것을 2장을 통해 알아 보았다면 이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말과 행함에 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단어가 선생인데 1절을 보면
James 3:1–2 NKRV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제가 학생 때 공부 했을 때 성생님이라는 직업이 참 뜨는 직업이었어요. 요즘 아이들은 유튜버도 되고 싶어하고 인터넷에서 방송하는 스트리머가 되고 싶어하더라구요. 이처럼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선호받는 직업이 있듯이 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직업이나 사람이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는 모습을 보고 선생이여라고 부른 것을 생각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자질과 소양이 충분하고 모범이 되는 이를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되고 싶어했어요.
특별히 교회에서도 이렇게 선생이라고 불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무런 자질과 소양이 갖춰지지 않고 자신이 가르치는 말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도 선생이라고 불리우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가르쳤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리가 변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무나 경솔하게 선생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하면 그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선생이되어서 가르치는 데로 못살면 더큰 심판을 받으니 선생이 많이 되려고 하지 말아라라고 말합니다.
저도 교회학교에 있다보면 아이들이 커서도 잘 따르는 선생님이 계셔요. 커서도 연락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를 보면 인기가 많거나 잘 가르쳐서 따르는게 아니라 그렇게 사는 선생님을 잘 따르더라구요. 핸드폰 하지말라고 했는데 핸드폰하고 이쓴 선생님의 말이 무슨 권위가 있었어요. 서로 사랑해야해 라고 알려주는데 이 아이는 편하니까 잘해주고 이 아이는 힘드니까 대충해주면 아이들도 그걸 압니다. 저희도 존경하는 목사님이나 장로님 중에 큰 일을 해서 존경하는 부분보다 힘든 상황속에서도 말씀대로 살아내니까 존경하는 부분이 더 크죠.
이처럼 가르치는 자가 자기가 가르치는 데로 행하지 못하면 더 큰 심판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작은 혀의 큰 영향력

그리고 등장하는게 혀 인데 두가지의 예를 들어서 혀의 기능과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말을 예로 드는데 우리가 내뱉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탈 수 있는 말을 예로 들고, 두번째는 큰 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3절에
James 3:3 NKRV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에 입에 재갈을 물려서 말에 온 몸을 우리의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4절에
James 3:4 NKRV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우리보다 큰 배도 선장의 손에 있는 키의 방향대로 배를 제어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야고보는 저희에게 혀에 대한/말에 대한 설명을하면서 1)말의 입에 재갈이 말의 방향을 조절하듯이, 큰 배의 키가 그 방향을 조정하듯이 우리의 혀/우리의 말이 인생의 방향을 조절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오늘 말의 크기에 비해 입에 물린 제갈이 작은 것 처럼 큰배의 선장의 손에 있는 키 처럼 비로 작을 지라도 그것이 방향성을 결정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비록 혀가 우리의 몸에서 굉장히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영향력이 굉장히 큰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혀가 이처럼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죠.
이어서 야고보는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James 3:5 NKRV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얼마 전에 la의 큰 산불이 있었죠. 민가 뒷마당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산불이 20일간 계속되었고 서울면적의 1/3을 태우면서 겨우 진화되었는데 이처럼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 처럼 우리의 작은 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설명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배경아래 141편 3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Psalm 141:3 NKRV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우리가 함부로 이야기할 때 함부로 말할 때 작은 혀에서 악한 영향력이 나로 수 있기 때문에 시편은 나의 입과 입술을 켜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합니다.
James 3:7–8 NKRV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여러 짐승들은 사람들이 다 길들여왔고 길들일 수 있었지만 혀를 길들이는 사람은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굉장히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설명절이 저희에게 오랜만에 가족들도 보고 좋은 날이지만 또 이런날 만큼 사건사고가 많은 날도 없습니다. 제 주변준들만 보더라도 명절날 오히려 집에 있는 친구들이 더 많더라구요. 왜 그런지 물어보니까 결혼하라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안간다는 친구도 있고, 가봤자 기싸움하다가 말싸움으로 번져서 아무것도 안인 일에 서로 감정 상하는 일들이 있어서 같이 안 모이는 경우도 간간히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러는데 우리는 어떨까요? 그 다음절에
James 3:9–10 NKRV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야고보서를 읽다가 참 충격을 받았던 구절이 이부분이었는데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는 이 말이 충격적이지만, 너무 잘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찬송을 올려드리지만 동시에 입으로 서로를 상처입히고 저주하는 (비난하고 비판하는)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혀는 본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 에서
Isaiah 43:21 NKRV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우리의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우리가 우리의 혀로 마땅히 해야할 선한 것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입술을 가지고 저주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저주하는 대상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을 저주하는 일이 하나님을 저주하는 일되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조금전에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결국 입술로 하나님을 저주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을 들어내면서 야고보서는 이제 너희가 한가지만 선택해야한다고 말합니다.
James 3:11–12 NKRV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는 이 비유를 통해서 이제 우리는 한가지의 모습만 선택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샘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는 것 처럼, 무화과 나무에서 감람열매를, 포도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처럼 이제 한가지의 모습만 보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 사람의 말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는 것 처럼 우리의 말을 보면 우리가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깊은 마음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알 수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혀는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들어냅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Matthew 12:34 NKRV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거룩한 것도 있지만 악한 것도 있기 때문에 입술로 찬송과 저주가 동시에 나옵니다. 그렇게 때문에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품은 것이 입술로 고백되어지고, 입술로 고백되어진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니 그 말씀대로 살아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말을 하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마음에 품는 것이 입으로 고백되어지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처럼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의 말씀이 우리 심령가운데 가득채워져서 진리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살아내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어도

그리고 등장하는 말씀이 지혜와 총명입니다.
James 3:13 NKRV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저희가 1절에서 보았던 선생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13절에서는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은 말을 잘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행을 행하는 사람이 지혜와 총명이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은 행함으로 들어나야 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땅에서 난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그 지혜는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데 14절에
James 3:14–15 NKRV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너희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합니다. 자랑하고 거짓말 하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시기와 다툼을 품는 사람은 말로만 자랑하고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씀이죠. 이러한 지혜는 땅에서 난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위로부어 오는 지혜는
James 3:17–18 NKRV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의의 열매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 긍휼, 선한 여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이 모든것은 말로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성결과 화평만 보더라도, 성결은 부정하지 않은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마음이 아니라 한가지에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화평은 평화롭게 하는 것도 맞지만 나 혼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감을 뜻합니다.
나만 잘 살기 위해서 시기와 다툼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 서로 더불어 평화를 이루고 의의열매를 맺는 자들을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은 자들로 이야기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려고 할때 말로만 하는 땅의 지혜가 아니라, 위로 부터 오는 지혜로서 의의 열매를 삶에서 맺어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혼자서 자기만 잘 되는 삶이 아닌, 더불어 평화를 이루고 말씀을 행함으로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명절을 은혜안에 잘 보내고 오늘 이자리에 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저희가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품은 것을 입으로 고백하고 그 말대로 우리의 삶의 방향 되는 것 처럼 저희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진리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우리가 주인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저희의 삶을 다스려 주셔서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의 진리가 온전히 선포되어지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우리의 인생을 붙잡아 주시옵고, 함께하여 주시옵고, 도와주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저희가 땅에 속한 지혜가 아닌 위로 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기 원합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자기 중심적인 지혜로 나만 바라보고 나만 생각하는 지혜이지만, 위로 부터 오는 지혜는 서로 평화를 이루는 지혜인 것 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며 화평을 이루는 주님의 지혜를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기도할 때 저희가 소유한 지혜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한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삶에 모습을 재정비하는 시간되게 인도하여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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