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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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559장, 430장
봄이 오는 것 같았는데 이제 5월이 다가왔어요. 어제 첫날 새벽예배도 했는데, 가정의 달인 5월이 참 바쁜 달이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을 붇잡는 저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 창세기 10장의 내용은 1절에도 나와 있듯이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입니다. 저번에 아담의 족보를 함께 보았죠. 아담의 족보도 쉽지 않은 족보였는데 그래도 설교시간에 표를 보면서 몇번 보았던 내용들이었는데, 오늘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를 보면 더 생소한 이름들도 있고, 잘 들어보지 않은 인물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말씀은 저희가 주목해서 보지 않는 여러 성경 구절 중에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저희가 성경을 읽을 때 좋은 말씀드을 선택해서 읽는 것도 좋지만, 성경이라는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바와 목적이 분명하게 들어나는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의도된 족보
의도된 족보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오늘 읽은 말씀도 계보 구절인데 성경에서 계보/족보는 다분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저의 집안에 족보가 있어요. 저는 율곡 이이의 15대 손이에요. 그래서 예전에 율곡 이이들의 족보를 본 적이 있었는데 족보 안에도 파가 있고 유실된 자료도 있고 여러가지 많은 정보들이 족보안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계보는 보면 저희 아버지 쪽은 할머니의 어머니 부터 믿음을 지키셨고,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신앙을 지키셨어요. 그래서 신앙의 족보를 본다면 제가 알고 있는 집안의 족보와는 다른 족보가 만들어 집니다.
이처럼 장자로 이어지는 사실적인 계보를 성경은 들어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의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가 들어가 있는 것이 성경의 족보입니다. 그래서 족보를 통해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노아의 족보를 읽어봤을 때 동생 야벳부터 시작해요. 보통은 글을 쓸 때 앞에 강조를 두고 싶은게 있고, 뒤에 강조를 두고 싶은것이 있는지 글에 짜임을 보면 동생 족보부터 이야기 하면서 셈을 통한 아브라함의 족보 강조하기 위해서 셈을 마지막에 두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장에 등장하는 많은 후손들의 등장은 창세기 5장처럼 누가 누구를 낳고, 언제 죽었고 이런식으로 나오지 않고, 그들의 이름이 단순히 이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들들 마다 족보가 끝날 때 “누구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되였더라(20절,31절)”라고 말합니다.
노아의 족보는 단순히 누가 장자 누구를 낳았다만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자녀들이 하나 하나의 나라와 민족들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족보가운데 다분히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 역사를 이끌어가십니다.
오늘 보는 족보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섭리가 있듯이 하물며 우리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섭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5월달 가정의 달이죠. 우리 집은 지금 믿음의 족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그리고 우리 집안에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 원합니다.
꼭 믿음의 나는 몇대다 이런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의 자손으로서 저희도 그 계보안에 있는거거든요. 우리가 그 족보안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특별히 가족안에서 믿음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기 원하는데요.
대심방 중에 가족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 믿음이 다시 회복되고 예수님과의 첫사랑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오늘 저희가 기도하는 새벽제단에 나왔는데, 특별히 가족가운데 믿음의 계보를 함께 이어나가기 원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노아의 족보 70명
노아의 족보 70명
이제 노아의 족보를 보면 야벳의 자손들이 14족속, 함이 30/서른족속, 셈 26족속 합쳐서 70/일흔 족속이 등장합니다.
성경을 보면, 요한계시록에서도 그랬는데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3이 하늘의 숫자고, 4가 땅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늘과 땅의 수를 더라면 7로서 완전 수 라고 합니다. 또 3과 4를 곱한 12도 완전수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7, 12같은 숫자는 완전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족보의 70명은 무엇일까 볼 건데, 노아의 자손들이 분명 더 많았을 텐데 70명이라고 오늘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70년의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처럼, 아담의 직계 후손인 노아를 통해 그 이외의 모든 망가진 인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나타납니다.
노아를 생각해보면, 방주에서 나왔더니 다시 땅에 발을 딛고 나와서 푸른 풀들이 있고, 동물들이 나와서 노다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니까 약속의 무지개를 보여주시는 이 상황이 굉장히 밝아보이지만, 방주에서 딱 나왔을 때 살아남은 인류의 수가 여덞 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보면 재난영화 수준을 넘어서서 인류멸망이 따로 없어요. 인류는 다 죽고 우리 가족만 살아남았다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말씀하셨던 명령,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노아의 자손들을 통해서 다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래서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통해서 오늘 함께 읽은 10장 말씀에 등장하는 70명의 이름이 등장하고, 이들은 다른 족보들 처럼 누가 누구를 낳는 것에서 끝나는 족보가 아니라 20절, 31절처럼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가되는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회복하는 첫단계에서 70명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70명의 족속들/민족들을 세계 곳곳에 흩어두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실 이 족보가 이름들은 하나도 안 친숙한데, 저희에게 굉장히 익숙한 지명과 민족은 등장합니다.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저희가 예언자들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보고 있는 앗수르와 이번주 수요일에 요나 말씀 들었는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니느웨도 등장합니다. 이처럼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그리고 15절에 가나안 족속들의 이름도 등장하여서 흩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지명과 족속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훗날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등장하는 나라와 족속들이 노아의 족보, 70명의 족보 안에 들어갑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흩어져있는 민족과 나라들조차도, 심지어는 이스라엘 족속을 괴롭히고 또한 대적하는 족속들 조차도 하나님께 구원받은 노아의 자손들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에 등장하는 70명은 세상 열국과 민족의 조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세계 여러 곳곳에 사람들을 흩으시고 퍼뜨리신 사람들입니다.
3. 마지막으로, 그렇기 때문에 결국 모든 만민의 족보는 결국 하나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줍니다. 이 지구위를 살아가는 80억명의 어마어마한 인구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인류의 뿌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70명의 족보로 시작되었구요, 그 전에는 3명의 형제로 시작되었고, 그 전에는 오늘 함께 읽은 족보의 뿌리인 노아, 그 조상인 아담과 하와,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니므롯
니므롯
그러면서 이름과 지명은 나오지만 특별한 설명이 없는데 오늘 몇절을 할애해서 설명이 등장하는 인물이 한명 나옵니다.
함의 자손들의 이름이 나오다가 갑자기 니므롯이라는 사람의 설명이 나오는데 뭐라고 설명하냐면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용사라고 말합니다. 용사, 굉장히 좋은 단어죠. 용맹하고 담대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말인데, 9절에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말도 좋은 말입니다. 그의 속담도 있는데 새번역에는 이것을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주께서 보시기에도 힘이 센 니므롯과 같은 사냥꾼"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그런데 이 말씀을 조금더 분명히 보면, 원어로는 어떤 의미로 쓰였냐면 “여호와 앞에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대적해서”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대적해서 나온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니므롯의 이름이 배반자, 반역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저희가 많이 쓰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는 반역자로서 하나님과 멀리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세상에 첫 용사,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볼 것이 그냥 단순한 사냥꾼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무력을 이용할 수 있는 힘있는 독재자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니므롯의 지역이 등장하는데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바벨이라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이 바벨은 나중에 바벨론의 근거가 되지만 바로 다음장의 바벨탑이 세워질 곳입니다. 니므롯은 힘있는 독재자로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앗수르로 나가서 니느웨까지 카는데 12절 마지막에 아주 성을 세웠다고 합니다. 얼마나 큰 성이였으면 요나가 사흘길을 걸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거의 제국같은 큰 성을 만든거에요.
굉장히 큰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 첫 용사라고 불리는 니므롯의 업적 처럼 나옵니다.
노아의 아들중에 아버지의 수치를 건드렸던 함의 자손이 너무 잘 되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면적만 봐도 굉장히 크고 얼마나 부유하고 큰도시가 개발되고 잘 되었겠어요.
그런데 오늘 저희가 봐야할 것은 하나님은 첫용사이고 사냥꾼인 니므롯같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셈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 족보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나게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니므롯 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 것인가가 매 순간 저희의 선택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에서 영웅으로 살아가고, 또 우리의 자녀들을 이런 용사와 같은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용사로 살아가는 방식, 추구하는 목표를 우리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셈을 통해서 나온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세요. 갈길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가야했는데, 니므롯의 삶은 튼튼한 큰 성에서 강한 힘으로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니므롯이 주는 저런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주님을 우리가 만났고, 믿음의 역사로 하늘의 영광을 직접 알기 때문에 돌이켜 화개하며 십자가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택이 우리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노아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섭리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땅에 퍼져나가고 결국 그 민족들의 족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 처럼 저희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믿음과 역사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봄비가 내리며 땅이 촉촉해지는 계절에 새벽을 깨워 예배의 자리에 오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노아의 족보 속에서 망가진 인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나타나 있었고, 여러 곳으로 흩으셨지만 결국 하나님 안에서 뿌리 두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족보가 이어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도 주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족보를 따라가게 하시고, 특별히 우리의 가족들이 주님 안에서 그 믿음을 이어나가는 구한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때로 살아가면서 세상의 용사와 같이 영웅으로 살아가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어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여 우리의 삶을 회개하고 돌이켜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을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처음 부터 마지막 까지 은혜의 시간되게 이끌어 주심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