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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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는 것
고향을 떠나는 것
제가 충북 제천에서 올라온 것은 여러분도 많이 익히 들으셨을 텐데요, 사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다보니까 목회지가 옮겨지게 되면 저희 가정이 함께 움직이게 되어서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는 이사를 자주 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제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아버지가 신촌에 있는 창천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셨을 때 인데요, 제가 5살 때까지 살았었기 때문에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한가지 기억이 나는 것이라면 집 마당에서 눈 사람 만들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는 성동 지방 중곡동에 있는 중곡 교회에서 6년 정도 목회를 하셔서 거기서도 지내게 되었고,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때, 충북 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거기서는 거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내게 되면서 저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계속 지내게 된 것이 아니죠. 제가 고등학생 때 자퇴를 하고 1년간 다니엘리더스 스쿨이라고 하는 기독교 대안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기 위해서 서울에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내기도 했구요. 감리교신학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또 서울로 가게 되고, 사회복무요원, 다른 말로 공익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서는 또 인천에서 외갓집에 신세를 지면서 살기도하고, 유학 때문에 2-3년 정도를 미국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따지고 보면, 저는 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주 이사를 가고 제가 사는 거처를 옮겨다니게 돼다 보니까 남들보다는 이사를 가고 옮겨가는 것에 거부감이 좀 더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생전 들러본 적도 없는 안양에 와서 사역하는 것에도 거부감 없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데 가끔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경험도 수도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처음 만안교회에 부임해서 전해드렸던 이주혜 전도사님을 만난 스토리에서 말씀드렸지만 미국에서 도저히 못버티겠어서 도망친 자리에서 집 근처보다는 조금 멀리 있는 교회 하나를 랜덤으로 집어서 갔는데 이주혜 전도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결혼까지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요.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12장의 말씀에 등장하는 아브람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모습과, 도망치는 모습, 그리고 도망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역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함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창세기 12장의 말씀은 처음으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사실 굉장히 자주 읽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주 익숙하실 텐데요, 그래도 복습하는 차원에서 대체 아브람이 어디서 떠난 것인지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의 시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딱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시점에서 아브람은 하란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보통 갈대아 사람의 우르라고 하는 도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은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의 고향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그러니까 저에게 있어서 제천에 살았던 시절이 아브람에게는 하란인 것이고,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서울에 살았던 시절이 아브람에게는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곳입니다.
지도를 한번 보시면요,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 아브람의 아버지의 집, 데라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라는 곳이구요, 거기서 유브라데스강을 쭉 따라 올라가면 하란이라는 곳이 등장하죠.
아마 생각해보면 하란이라는 곳에서 사는게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지도에는 잘은 안나오지만 강 줄기가 하란에도 뻗어있고, 물을 잘 찾을 수 있다는 말은 떠돌면서 앙떼 같은 목축업을 해도 잘 기를 수 있고, 농사를 지어도 잘 기를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수요예배 때도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 고대 근동 지방에서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고향 집을 뜻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서 쌓아놓은 부와 집, 상속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당장 편의점 같은 것도 없어서 먹을 것도 다 싣고 다녀야하고 기르고 있는 가축의 수가 곧 가족들을 먹이고 살리는 재산인 세상에서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상속을 모두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사하고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언약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약속을 아브람에게 주시는데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주 모든 민족가운데 커다란 민족을 세워서 너를 축복하면 내가 복을 내리고 저주하면 내가 저주할 것이다라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람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슴에 아브람이 순종해서 떠났다는 것이죠.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슬하의 모든 가족들을 다 데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합니다. 아주 어려운 선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미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 순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가나안 땅에 가면, 내가 복을 주리라”라고 하신 말씀에, “예 가겠습니다.”하고 가서는 도착을 했어요.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약속을 하십니다. 지금 여기에 가나안 사람들이 이 땅에 거주하는데, 내가 이 땅을 저 가나안 사람들이 아니라 네 자손에게 주리라 라는 언약을 세우십니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래서 아브람이 여기서 제단을 쌓게 되구요,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라고 기록하는데요.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서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기도 하지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여기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곳이다”하고 깃발을 꽂은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이 여기를 나에게 주시겠다고 보증하셨다!”라고 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에서 아브람이 도장을 꽝! 찍은 것입니다.
아브람의 도망
아브람의 도망
이제 정말로 남은 건 그냥 가나안 땅에서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나안 땅을 주시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거기서 가만히 있지 않았죠.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에 갔는데, 기근이 들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시고, 아브람이 도장까지 찍은 가나안 땅을 버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여러분 이 잘 아시는 사래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기를 “여보, 당신이 하도 아리따운 사람이라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 나를 죽이고 당신을 살려서 데려갈 것 같소. 그래서 차라리 나의 누이라고 해서 내가 죽지 않게 좀 도와주시오.”라고 하고 그대로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집트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파라오 왕의 궁전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는 형제인 아브람에게 막 양, 소, 노비, 나귀, 낙타를 막 퍼주면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 때문에 본문말씀 3절에 등장하는 것처럼 축복하는 이에게 복을, 저주하는 이에게 재앙을 내리신다는 말씀을 실현시키시는 지 파라오와 그 집에 아주 큰 재앙을 내리시게 됩니다.
그래서 파라오가 아브라함을 불러다가 “아니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한거요? 왜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누이라고 속여서 내가 데려다가 아내로 삼게 만든거요? 자 여기 당신의 아내가 있으니 얼른 데려가시오!”하고 그 전에 줬던 것까지 덤으로 얹어서 아브라함을 보내게 됩니다.
아브람의 죄
아브람의 죄
사실 이부분은 굉장히 이해하기가 힘든 내용입니다. 아브람이 아주 큰 잘못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이집트 사람들은 저희가 무슨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개방적인 것으로만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의 사진인데요, 해당 파피루스를 포함해서 고대 이집트 인들의 기록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자유롭기도 한 그런 모습도 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이혼 소송을 걸기도 하고 재산 분할에 대해서도 나름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특히 불륜을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는 죄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파라오의 입장에서 아브람이 사래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여서 파라오의 아내로 맞아들게 한 것은 파라오의 입장에서는 아주 크게 화를 낼만한 상황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브람이지 파라오가 아닙니다. 오히려 파라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보답으로 이것저것 퍼주기까지 했는데 봉변을 당했으니,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을 당했을까 싶을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명백하게 아브람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참 저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든 말씀이기도 합니다. 대체 하나님이 왜 파라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걸까요?
여러분 여기서 먼저 아셔야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기근이 생기니까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저희가 꼭 기억해야합니다. 저희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못견디겠어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근데 참 도망쳐서 제천 사람들에게 도망친거 들키면 괜히 창피할 까봐 원주에 있는 교회로 갔는데 거기서 이주혜 전도사님한테 딱 걸려가지고 결혼까지 가게 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이 도망친 자리에서도 여전히 저희를 지켜보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심지어 아브람이 죄를 짓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언약을 지키시고, 또한 그 죄 때문에 생겨나는 일들로 인해서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섭리를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브람은 죄를 지은 것이지만 오히려 그 죄로 인해서 이집트에서 쫓겨나듯이 나와서, 기근을 피해서 도망쳤던 자리에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놓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13장에서 나오게 되죠.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잊지는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오늘 등장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가나안 땅에 살다가 땅에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도망가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데요, 어디 성경에 다른 말씀 하나가 생각나지 않으신가요? 야곱이 사는 곳에 기근이 들어서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내려가게 되고 이후에 400년 간의 노예 생활을 하게 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아브람에게도 일어나게 됐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아브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셔서 가나안땅으로 돌아왔지만, 이 죄는 결국 아브람의 후손들이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하는 재앙과 같은 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하나님께서 저희가 저희 죄를 고백할때, 저희를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죄로부터 속히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이 함께 읽은 말씀을 두고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아브람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과 같이 저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춰 떠날 용기를 허락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장소에 가정에 나라에 언어에 머물게 되면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변화가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 였음에도 아브람이 순종해서 떠나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운 것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저희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합니다. 이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순종할 용기를 또한 함께 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희가 기근을 만나면 도망쳤던 아브람같이 저희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도망치는 연약한 사람들인데요, 도망한 자리에서도 여전히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삶 가운데 실패하고 도망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 속히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혹여 주변에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의 자리에서 떠난 이들이 있다면 그들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심을 붙들고 떠나간 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저희의 죄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우리가 죄악된 자리에 있다면 속히 돌이켜 회개하는 기도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사람을 용서해주시는 분이심을 저희가 수요예배 때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해서도 보듯이 우리가 우리 죄를 이시간 고백하고 회개할 때에 다시 제단을 쌓았던 자리로 돌아갔던 아브람과 같이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