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파괴를 묵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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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평안하십시오’ 하고 서로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본의 지배 아래에 있던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 76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3년 뒤 대한민국이 건국을 선언한 날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1919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도 동의하지만, 해방 후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1919년 임시정부의 통령이나 1948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다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오늘을 건국일로 선포하면서 동시에 이를 건국 첫해로 보지 말고 19년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자고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고 북한까지도 한나라가 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오늘을 광복절과 함께 기념하되, 통일 이후를 바라보고 이날이 분명 대한민국의 첫날이 아님을 바르게 인식하여 통일의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중에 긴 무더위 끝에 장마성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기상청은 변화된 기후로 인해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의 일반적 기후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현상이라 이전에 없는 변화된 환경이라고 합니다. 달라진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건강 주의하시고 안전사고 없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S2. 본문의 주제
오늘은 묵상에 대한 주제 중 성전 파괴와 관련한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소망의 약속을 붙드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의 묵상은 경우적 묵상과 엄숙한 묵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엄숙한 묵상의 경우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하려고 하면 생각만큼 단순하고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있고, 또 다양한 문학 장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서 그 의미를 다 알려고 하면 몇 가지 준비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선 교리를 통해 성경의 주요 가르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교리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모든 개인들이 임의로 성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의 교훈이 아니라 그냥 도덕적 훈계 정도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믿지 않는 분들 같으면 그 정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영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럴려면 교리를 바로 이해하는 중요합니다.
더하여 성경은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구속사라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성경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중심 주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더구나 성경은 다양한 문학장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각 장르마다 갖추고 있는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너머 말씀을 묵상하여 영의 양식을 취하고 생명의 은혜를 누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새 백성으로 살아가는데는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 캠퍼스 선교단체들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교회에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에서는 일년 반 정도만 교육해도 좋은 리더가 길러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많은 교육 내용을 축소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실 제자 훈련을 하는 교회가 오히려 제대로 된 교리 교육이나 성경 교육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바르게 말씀을 배우기 위한 이러한 교리적이고, 역사적이며, 문학적인 성경 공부가 가능하도록 준비를 해 가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코로나 속에서 이런 영적인 준비를 갖추시는 모두가 되어서 성도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나아가 이웃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을 통해 서로 교제하면서 영적인 충만함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특별히 성경의 내용 중에서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욥기의 어려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욥의 고난은 사실은 죄에 대한 형벌적 고난은 아니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잘 살아가는 욥에게 그가 죄인이며, 그를 위해 대속자가 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욥은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심판의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의 인생이 대속자가 필요한 죄인의 인생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대속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주제 못지 않게 성전을 파괴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또 하나의 어려운 주제인 성전 파괴의 의미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 문제 제기
3. 문제 제기
우리는 최근에 예레미야를 큐티로 묵상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특별히 35장 이후부터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46장 이후 열방 예언을 거쳐서 52장 마지막 장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기록합니다. 우리 본문 52장 12, 13절을 봅시다.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성전이 불태워졌다는 말은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단순히 성전에 불을 질러 태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17절 이후에는 성전의 파괴가 보다 상세하게 드러나 있는데 시간 상 17절 말씀만을 함께 읽겠습니다.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여기에 보면 성전의 파괴는 단순히 불질러 태운 정도가 아니라 성전을 이루고 있던 모든 놋기구들이 다 뜯겨나가거나 깨뜨려져서 바벨론으로 백성들과 함께 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파괴를 통해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이 사라졌고, 그 모든 기구들은 이방인, 특별히 바벨론의 전리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니 백성들이 죄를 지었으면 그들만 심판을 받고 포로로 끌려가면 되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전리품으로 전락되게 하셨나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 이렇게 파괴가 되어 인간과 같이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건 잘못된 거야? 이건 하나님이 약하시고 실제로는 힘이 없는 신이라서 그런 거야 하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강대국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 하나님은 참 신이 아닐 거야 하는 생각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으로 와 닿는 것이지요.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우리는 이런 충격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광대한 능력을 가지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죄지은 이스라엘이 심판받도록 하시는 것이야 당연하시겠죠.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 파괴가 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전리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한 신이 아니라 약한 신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생각이 닿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약한 분이시거나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약한 하나님이 되시고 무력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 하나님은 지금 약해지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왜 그럴까요? 왜 강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짐을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지금 파괴되어 깨어지시는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은 다름 아니라 포로로 끌려가는 자기 백성의 죄의 값을 대신하기 위해 받으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의 아버지이십니다. 성도를 위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대신 약한 자가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형벌을 용서하시기 위해 보이신 은혜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물론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에 고난이나 심판을 받으셔야 할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자의 위격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예수님이 죽으시거나 질고를 지시는 일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의 죄의 값을 지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인간이, 더구나 죄인이 되신 분이십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예루살렘 성전 앞에 서셨을 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요한복음 2장 9절의 말씀을 봅시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보면 부활을 위하여 성전이 헐어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깨지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그 형벌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무너지고 깨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성전을 통해 우리 가운데 계시 되었고, 70년 이후 스룹바벨의 제 2성전의 건설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실 구원의 약속을 보여 주는 계시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파괴되신 성전으로 오셔서 우리의 참 구원자가 되십니다.
W1. 예수님은 파괴되신 성전으로 오셔서 우리의 참 구원자가 되십니다.
범죄하여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성전을 파괴하심으로 그 모든 죄를 대신하여 지실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성전의 파괴를 통해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이후 제2성전을 세우심으로 그들을 다시 본토로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파괴된 성전으로, 동시에 부활하실 회복의 주인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W2. 참된 회복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만 이루어집니다.
W2. 참된 회복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만 이루어집니다.
죄인의 구원과 회복은 성전이신 주님의 파괴와 생명되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부활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과 힘과 도닦는 것에 구원이 있지 않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 필요하고 그렇게 힘써야 하지만 그것으로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참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W3.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파괴와 회복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하십니다.
W3.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파괴와 회복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용서로만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대속의 주님이 주시는 용서 외에 하나님의 기준을 성취하여 구원을 받을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의 파괴시키셨고, 2성전을 세우심으로 구약을 종결하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은혜의 통로인 것입니다.
T1. 성전의 파괴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희망의 약속이었습니다.
T1. 성전의 파괴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희망의 약속이었습니다.
물론 당장에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한 통곡은 예레미야에게 애가를 지어 슬픔을 노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애가를 부르면서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가 3장 20-22절을 봅시다.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성전 파괴로 인한 심판을 마음에 기억하고 낙심을 했다가 놀랍게도 그 낙심이 소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로 포로로 간 자들이 다 진멸되지 않고 다시 돌아올 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파괴로 그 백성을 속량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보았기에 그의 낙심은 변하여 소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T2. 오늘날 우리에게도 죽으신 예수님은 소망이 되십니다.
T2. 오늘날 우리에게도 죽으신 예수님은 소망이 되십니다.
물론 2성전을 새로운 성전으로, 새로운 율법으로 오해하고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성경을 모른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성전의 파괴와 회복이야말로 오실 메시야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오히려 새로 세워진 2성전을 중심으로율법을 지키는 것을 우선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고 높여서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섬기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인간이 힘을 다하면 좋은 세상을 이루고, 자신도 높아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의 회복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T3. 성도의 복
T3. 성도의 복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 참 구원이 있고,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받을 형벙을 위해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흘 만에 주님은 부활의 영광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포로의 땅에서 되돌려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 마음에 간직하시고 깨어진 성전,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이신 성전을 파괴하심으로 포로로 끌려가던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를 마음에 붙들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에 등장하는 많은 열방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교만하다가 심판을 받아 역사 속에서 약자로 전락한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주신 강함의 은혜를 무시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높아져 다른 민족을 무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다가 이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참된 복과 근원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것인데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있다고 생각하여 교만하게 행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든 가르침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성도인 우리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살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오직 은혜요 주님의 선물일 뿐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더욱 더 풍성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의 고난에 소망이 있음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살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강한 자가 아닙니다. 은혜 주시는 강하신 주님을 붙들고 믿음 안에서 주신 능력과 강건하신 힘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두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람이 뭘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항상 우리를 교만으로 인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뭔가 너무 부족하면 스스로 비참한 자리에서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성도는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과 재능과 물질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모든 죄의 고난을 지시고 죄인된 우리에게는 주님의 은사와 능력을 회복시켜 주심으로 우리를 이 땅에서 강건하게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한다면 강하신 주님, 풍성하신 주님만을 자랑하고 스스로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고난의 주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 우리 모두는 다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을 자랑하고 나를 살아가게 하신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전 파괴의 은혜를 깊이 마음에 새기시면서 이 한 주간도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깊이 붙들고 믿음 가운데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양
은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