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받을 만한 그릇된 믿음
Notes
Transcript
서론
사무엘상 3장 본문은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 가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나오고 4장에는 그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심판의 예언이 실현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본문을 통해 그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회개가 없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회개가 없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번의 패배가 등장합니다. 1절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을 때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사망한 군사가 사천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3절에서 전쟁에서 왜 패배하게 되었는지 나름대로 피드백을 합니다. 3절에 보시면 이스라엘의 장로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장로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 전쟁의 승패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알았으면 하나님께 기도를 하든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든지 해야 하는데 전혀 다른 지침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언약궤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경험하도록 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언약궤를 앞세워서 요단강을 건넜고 언약궤와 함께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언약궤에 무슨 마술적인 힘이 있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장로는 언약궤를 마치 하나님을 조종하는 마술적인 도구로 이해하고 언약궤를 들고 가기만 하면 블레셋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3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예언처럼 엘리 제사장 집안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장로는 전혀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어떤 도구를 쓰거나 하는 어떤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 동안 지겹도록 외적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 때 마다 하나님께서 주변국가의 침공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으로 부르짖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장로는 이전의 구원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조종해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하는 이상한 신앙적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에는 전쟁터에 빈 의자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 빈의자에 자기가 믿는 신이 앉아서 전쟁을 주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조차도 이런 미신적인 것에 물들어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세상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이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물들고 변질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 있는 실로에 사람을 보냅니다. 그래서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 언약궤 양옆에는 제사장인 흡니와 비느하스가 있습니다. 흡니와 비느하스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도구로 조정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법궤가 그런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법궤의 바른 용도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하고 그냥 법궤를 들고 나가면 전쟁에 이길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믿음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법궤의 원래 용도는 무엇입니까? 법궤는 하나님의 특별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법궤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법궤는 다른 말로 언약궤라고 하는데 법궤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관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법궤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 없이 이 법궤를 전쟁터에 들고 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적용) 혹시 우리의 모습도 이 법궤를 가지고 나가는 이스라엘과 같지는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있으시고 내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어하시는데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대신에 나의 요구를 들어주는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의 관계에 관심이 있으신데 우리는 하나님 과의 관계 대신에 하나님이 나에게 뭘 해주실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잘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 인격이 있으신 분입니다. 바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사사시대적인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와 순종을 받으시는 분이지 우리의 조종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성은 자꾸 하나님을 나의 욕망의 틀에 가둬서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말씀과 기도로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 잘못된 믿음은 심판 받는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잘못된 믿음은 심판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굉장한 착각이 나옵니다. 법궤가 딱 등장했을 때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성경에 땅이 울린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겁을 먹습니다.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왔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8절에 보시면 블레셋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나옵니다. 블레셋은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을 꺾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구원 역사와 상관없이 사는데 오히려 이방 민족인 블레셋이 하나님의 출애굽 사역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조를 통해서 사무엘상의 저자는 이 스라엘의 믿음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표현합니다. 고대에는 전쟁을 신들간의 전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것은 두 나라의 신들이 그 추종하는 민족을 통해서 싸움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나라는 지는 나라보다 그 신이 더 힘이 세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블레셋이 생각하기에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신보다 강하기 때문에 겁을 먹고 긴장을 했습니다.
9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군사적인 사기를 끌어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9절에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져서 블레셋의 종이 되었는데 그렇게 된 것처럼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해서 종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대장부처럼 나아가라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을 조종해서 전쟁에서 승리를 얻으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블레셋은 그저 악으로 깡으로, 우리가 전쟁에서 패배해가지고 이스라엘의 종이 될 수 없다는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잘못된 믿음과 세속적인 신념 이 두 가지가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하나님께서 잘못된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블레셋의 세속적인 신념이 하나님 백성의 잘못된 믿음을 꺾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징계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이전에 법궤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은 전사자가 나왔습니다. 역시나 하나님은 인간의 의도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전의 패배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인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인 흡니와 비느하스가 그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법궤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부터 사사시대를 거의 지나도록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가장 거룩한 곳에 있는 가장 거룩한 물건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담보하는 물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임재하시고 말씀하신다고 했던 국보 1호의 물건입니다. 그 안에 아론의 지팡이, 만나가 담긴 항아리, 십계명 돌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옛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복음이 형상으로 드러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부심이고 믿음의 결정체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빼앗겼으니 굉장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법궤라도 그 법궤를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이 없으면 다른 민족의 전리품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흡니와 비느하스가 누구입니다. 대제사장의 직계입니다. 이들 중에 차기 대제사장이 나와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며 이스라엘의 믿음을 책임질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인물을 둘씩이나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바른 믿음이 없으면 순종이 없고 회개가 없는 그릇된 믿음에는 아무리 거룩한 물건도 전리품이 되고 거룩한 제사장 혈통도 그저 전쟁터의 희상자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잘못된 믿음을 철저히 파괴하시고 심판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증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믿음 없이 세워진 성물의 존재를 부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사하고 종교권력자들의 죄악의 온상이 된 성전이 무너진다고 예언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매대를 뒤엎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분이 성전이 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적용) 우리의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신앙의 경륜도 쌓고 기도의 경력도 쌓고 봉사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법궤가 이스라엘 백성의 자부심이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 믿음생활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 생활에 회개가 없고 순종이 없고 몸부림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나름대로 믿음의 경륜을 잘 쌓아왔더라도 그렇습니다. 참 두려운 이야기입니다. 혹시 우리가 혹시 하나님을 내 욕망의 틀에 갇혀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내가 멋대로 정한 나만의 신앙의 법칙에 하나님을 복종시키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잘못된 믿음은 세상 사람들의 열심히 사는 태도만도 못한 믿음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드러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차라리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를 들먹이지 말고 자신의 욕망대로 사는 불신자 입장이 더 낫다는 충격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인 신념 보다 우리 믿음이 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에 나의 욕망을 제거하는 제련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더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기억해야 합니다. 순종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순종해서 우리의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고 오로지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삶에서 내 욕망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치열한 씨름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결론
이스라엘의 믿음은 회개와 순종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에 맞는 수단으로 여기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회개하고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늘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삶을 사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