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무게를 두라!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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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엘리 제사장 가문이 심판 받는 것을 어제 본문을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왜 이런 심판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영광의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참된 영광을 경험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참된 영광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주 치명적이고 치욕적인 상황을 서술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를 경험하고 언약궤를 빼앗기고 흡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이 발생한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실로로 왔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이 왔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는 관습이 있습니다. 4장 본문에 일어난 충격적인 상황을 그의 옷차림을 통해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베냐민 사람이 도착할 때쯤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엘리 제사장이 전쟁터에 내보낸 법궤 떄문에 걱정하고 마음이 심란한 때였습니다.
베냐민 출신의 보고자는 엘리에게 전쟁의 상황 네 가지를 보고합니다. 이 보고는 가면 갈수록 어려운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점층법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엔 전쟁에서 도망간 것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인 흡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했다는 것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법궤를 빼앗긴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안 그래도 법궤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 상황에 있는데 이 법궤가 빼앗긴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 제사장은 의자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게 됩니다. 성경은 18절에서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많고 비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 이야기로 전환이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중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법궤를 빼앗기고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몸을 구푸려 해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출산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산모의 몸이 약해지고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상 말씀은 이 여인의 입술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합니다. 아들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와중에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가봇입니다. 카보드는 영광이라는 뜻이고 ‘이’는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영광이 떠남이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고 법궤를 빼앗긴 상황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광이 떠났다는 뜻 이카봇이라고 할 때 카보드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단어에서의 영광의 개념은 하나님의 무게, 하나님의 무거움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가벼운 분이 아니라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분입니다. 그 무거움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지금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무게, 하나님의 무거움이 떠났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8절입니다. 엘리제사장이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는데 이것을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 비대하다고 할 때 무게라는 말 카보드를 씁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상의 저자는 문학적인 기교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엘리제사장의 카보드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무겁게 느끼지 않고 자신을 무겁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게중심을 두지 않고 자신에게 무게중심을 두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자에서 넘어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무게중심이 그의 영광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카보드가 있는 엘리 제사장이 죽을 때 그의 며느리가 이스라엘에 카보드가 떠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신에게 영광의 무게를 둔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에 마땅히 영광을 받으실 분이 그렇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의 무게가 떠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무게가 떠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그 키는 오늘 본문에서 법궤에 있습니다. 법궤가 빼앗길 때 영광이 떠났다고 해석을 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특별임재의 상징이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 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무게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은 법궤를 가지고 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법궤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들은 법궤를 통해 전쟁에서 세상을 이기고 명예를 얻는 것이 영광을 경험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 많은 경우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주된 방식은 예배입니다. 복음이 울려 퍼지는 예배의 현장에서 회개하며 헌신하며 순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백성들에게 경험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무게를 경험할 때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의 용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통해 전쟁을 해서 명예를 얻으면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수단으로 해서 자기가 유익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했습니다. 그 착각의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방법은 복음을 수단으로 해서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세상 속에서 뭔가 얻어내고 성취하고 승리할 때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드리고 그 영광을 체험하는 방법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무게입니다. 나의 삶의 무게중심이 하나님께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뭔가 성공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삶의 무게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나에게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무게중심을 어떻게 두어야 되겠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조금 손해보더라도 나의 욕망을 조금 깎아내더라도 예배에 무게중심을 두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무게를 두는 것이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다른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예배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께 무게를 두고 하나님의 무게를, 영광을 경험해야 합니다. 법궤가 전쟁터에 나가서 우리의 도구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법궤는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예배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삶에 무게를 더하는 도구가 아닌 하나님께 무게를 두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은 타락한 예배자들을 떠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영광은 타락한 예배자들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게 참 무서운 말입니다. 예배자들이 불완전한 사람이고 실수도 할 수 있고 믿음이 좀 부족할 수도 있고 그런 건데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집니다.
당연히 예배자들은 죄인이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타락한 예배자는 복음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의 무게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두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삶의 무게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으로 두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예배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옛 언약의 백성들이 주기적으로 성막에 가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무게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 무게를 두지 않고 하나님께 무게를 두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무게를 두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복음을 이용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그 무게를 빼앗아 자기의 무게로 채워 넣으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엘리 제사장이었고 흡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엘리제사장은 오늘 본문에서 비대한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흡니와 비느하시는 실제로 성막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들을 자신들이 취해서 그 자신들을 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나 그 아들들이나 하나님의 무게감을 빼앗아 자신의 무게로 삼는데 있어서 어떤 회개도 없고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오늘 본문 15절에서 엘 리가 눈이 어둡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전에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을 때도 엘리의 눈이 어둡다고 하는 부분이 나왔고 오늘 본문에서도 엘리의 눈이 어둡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눈이 어둡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시력이 약한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하나님께 두는 그런 영적인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는 어두운 눈으로 제대로 된 믿음의 길을 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무게를 빼앗으면 안되는구나 라는 죄책감도 없고 회개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 무게감을 빼앗는 엘리 제사장 가문에게서 그분의 영광을 거두셨습니다. 그 물리적인 증거로 법궤가 이방인들에게 강탈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예배자는 껍데기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척하면서 자신이 영광을 받고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이런 것을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타락한 예배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거둬 가십니다.
(설명)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다가 벌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3절에 보면 헤롯왕이 백성들 앞에 나아와서 왕복을 입고 단상에서 연설을 하는데 백성들이 그 소리를 신의 소리라고 막 아첨을 합니다. 이때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헤롯을 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헤롯은 벌레가 몸을 먹는 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영광을 빼앗기지 않고 절대 누군가의 수단이 되고 배경이 되시지 않으십니다. 타락한 예배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탐하다가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거둬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적용) 우리는 타락한 예배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비대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잘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가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자와 교제하지 않으시고 만나시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것을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예배적 삶이 타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을 수단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경삼아 내가 드러나고 내가 뭔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락한 예배자가 아닌 신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가로채고 삶의 무게중심을 하나님에게서 나에게로 옮기는 일이 없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번 한 주도 하나님께 무게중심을 두는 한 주 보내시길,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려드리는 한 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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