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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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번에는 법궤가 다시 돌아오는 본문으로 은혜를 나눴습니다. 법궤가 돌아왔지만 진정한 회개는 법궤가 돌아온지 20년이 지난 후에야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진정한 회개에 대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참된 회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참된 회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법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들어간 지 20년 후에 완숙한 선지자로 성장한 사무엘이 등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서 선포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의 이 선포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4절에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됩니다.
3절에 전심으로 돌아온다고 할 때는 감정과 의지와 행동이 다 돌아온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 전심은 온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의식은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우상도 섬기면 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버리라고 한 바알신은 폭풍의 신으로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고 아스다롯은 풍요를 관장하는 가나안의 여신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당시 고대근동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섬기던 신이고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의 우상을 가정에 소유하고 섬기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그 이교적인 문화에 물들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상의 문화에 대해 싸워 이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사무엘이 이런 조그만 것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우상을 섬기지 마라고 선포합니다. 전심으로 회개하고 싶으면 제거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와 아스다롯을 제거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진정한 회개, 온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 죄송합니다. 열심히 섬기겠습니다.하고 다짐하는 것을 뛰어넘습니다. 감정이 뜨거워지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의지가 움직이고 결과가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이 행동이 무엇입니까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했을 때 우상에게 분산되었던 정성과 마음이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듭니다. 우상은 성질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의 일부분을 장악한 우상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줄로 알지만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는 일보다 내 일이 급하고 나의 취미생활이 더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은 단순히 내가 어떤 것을 섬기는 것뿐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섬기기 때문에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거기에 나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지속적으로 헌신하도록 합니다. 우상이은 떼어내기 힘들고 제거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 우상을 제거해야 참된 회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데 이미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서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나에게 참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은 멀고 내 삶에 달콤한을 주는 우상은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한 내 자신의 모습은 너무 멀지만 맛있는 피자 한 조각은 눈 앞에 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상을 제거해서 참된 회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번 본문이었던 7장 2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오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모했다고 나옵니다. 이 사모함의 히브리어 나하의 다른 뜻은 애통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애통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블레셋의 억압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늘 애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세월이 20년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억압을 당한 이유는 다름 아닌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해서 하나님께 계속 징계를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20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잘못을 알면서도 계속 우상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또 하나님께 애통하는 이런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진작 우상숭배 끊어버리지 뭐 하러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하나님께 징계 받는 악순환을 반복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이 우상을 떼어내는 과정 가운데 우상의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결국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있을지언정 포기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우상숭배의 유혹에 넘어가서 벌을 받더라도 다시 하나님께 애통했고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아예 포기하셔서 아에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며 하나님께 마음을 두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20년간 이스라엘 징계하셨다면 사무엘을 통하여서는 20년간 말씀의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과 4장 1절에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말씀의 사역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법궤를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나서 사무엘의 말씀 사역이 미미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분명히 사무엘은 법궤가 부재한 일곱 달 동안, 법궤가 기럇여아림 지역에 있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억압받는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말씀의 사역자로 지속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말씀을 전한다고 당장 블레셋과 전쟁에서 이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법궤가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계속해서 말씀의 사역을 해나갔습니다. 그 지속적인 세월이 20년이 된 오늘 본문의 상황에 이스라엘은 진정한 회개를 하며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참된 회개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적용)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뿌리 깊게 내린 우상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우상을 잡아 뜯으려니 삶이 송두리째 뜯겨나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의 경우와 같이 실패는 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성경 읽을 시간, 기도할 시간을 정했는데 그걸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더 헌신할 수 있는데 사회생활하면서 이웃을 위해 더 베풀 수 있는데 다시 이기적인 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실패하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그 실패가 반복하면 언젠가는 성공에 다가가고 내 삶에서 우상이 약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내 삶을 자리한 우상을 떼어내기 위한 치열한 씨름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그 다음 실패를 각오하는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자주 씨름하고 치열하게 씨름할수록 변화는 빠르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20년 7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말씀 사역한 것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제가 예전 교회에서 어떤 청년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자기 삶이 너무 안바뀌어서 혹시 성경 1독을 하면 내 삶이 바뀔까 기대를 하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1독을 해도 갑자기 삶이 변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삶이 바뀌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기도로서 끊임없이 말씀을 소화시켜야 합니다. 몸에 좋은 영양분을 갑자기 과다섭취 한다고 갑자기 몸이 좋아지진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건강관리를 하며 영양분을 흡수시켜야 합니다. 기도는 말씀을 소화시키는 방편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으며 기도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있으면 내 영혼에 뿌리박힌 우상이 점점 힘을 잃고 영혼이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다스림을 받는 것이 참된 회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다스림을 받는 것이 참된 회개라는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한 후에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을 길어 왔습니다. 물을 붓고 종일 금식을 합니다. 물을 붓는 것은 율법에서 지시하는 의식을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내린 엘리야 선지자도 단을 쌓고 그 위에 물을 내리긴 하지만 역시 율법에서 지시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어떤 학자는 물을 붓는 행위를 정결의 의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물을 붓는 것은 성경 전체적으로 씻음을 의미하고 생명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물을 붓는 것을 생명을 구하는 회개로 보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할 때 6절 마지막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다스린다는 말은 재판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이스라엘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대로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올바른 신앙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올바른 신앙의 방향이 바로 다스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제거하기만 하고 그 이후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또다시 우상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제거와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은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무엘보다 더 확실하신 중보자를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성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미스바에 뿌린 물보다 더 정결한 그분의 보혈로 우리의 마음의 죄를 씻어내고 우리를 제자 삼으시고 우리 믿음의 참된 모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선지자, 제사장, 사사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진실한 선지자 되시고, 가장 흠 없는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제사장이시고 사사보다 더 강력하고 견고한 왕권을 지니신 왕이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고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뒤엎으신 것처럼 우상으로 더럽혀진 우리 마음을 뒤엎으시고 거룩한 성전으로 삼아주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을 베푸시며 또 그분이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그 통치의 장은 바로 교회입니다.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우리 삶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성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심으로써 성화의 능력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회개한 것을 통해 오랫동안 그들을 압제하던 블레셋에서 벗어난 것처럼 우리의 삶에 강력한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참된 회개는 우리의 감정과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씨름으로 우리 마음에 뿌리박힌 우상을 제거하고 말씀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우상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회개의 완성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보다 더 완전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치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서 베풀어지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오늘 하루도 우상을 끊어내며 그리스도로부터 다스림을 받으며 진정한 회개의 능력을 체험하는 하루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