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의 일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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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번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세상 사람들처럼 왕을 가지고 싶다고하며 왕을 요청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인간적인 요청에 맞춰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선택하셨는데 그 사울조차도 결국은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 연약한 사람에 불과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싫어했던 하나님의 통치를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암나귀를 찾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암나귀 찾는 이야기를 처음 볼 때 이거를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할지 너무나도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만들어야 하는 제 입장에선 그냥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웠더라 이렇게만 쓰고 좀 신학적인 내용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신학적인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고데 왜 이렇게 왕을 세우는 이야기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서술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이야기도 성경말씀에 남겨놓으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본문을 읽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본문을 보아야 합니다.
특히 사무엘상은 이야기에 여러가지 상징과 특별한 장치를 마련해서 어떤 교훈을 강력하게 남겨서 교훈을 극대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학적인 요소들을 잘 살펴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향한 교훈을 잘 찾아야 합니다.
1- 사람의 일에는 부족함과 한계가 존재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사람의 일에는 부족함과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거절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다스리는 왕정체제를 원했습니다. 왕정체제에서는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적인 결정을 수용해주십니다.
그리고 9장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이 사람은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1절에 족보가 잠깐 나오는데 이렇게 족보로 추적 가능한 사람이면 뼈대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런 족보, 뼈대가 있을 뿐 아니라 재산이 풍족한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1절에 사울의 아버지 기스를 유력한 자로 묘사합니다. 21절을 보면 사울은 자기 집안을 별 것 아닌 집안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집안 배경을 가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의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는 네레이터가 1절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외모도 주목받을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은 사울이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키도 평균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야말로 제왕의 풍모에 비견될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을 세우고 싶어했고 사울은 그런 왕이 되기에 어느정도 배경을 갖추고 풍모를 갖춘 인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기대를 산산조각을 냅니다. 보통 왕이 되려면 뭔가 일반인과는 다른 스토리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3절부터 보이는 사울의 모습에서는 뭔가 엉성함이 느껴집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지시로 암나귀를 찾아다닙니다.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봤지만 암나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암나귀를 찾을 만한 특별한 지혜도 없었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시면 사울이 암나귀를 찾는 것을 포기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어떤 끈기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시면 사울이 사환에게 말하길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웅과도 같은 외모는 지녔지만 사울에게는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지혜나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상황에도 그들을 위하여 싸우고 구할 수 있는 왕을 찾았지만 왕 후보인 사울은 한계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9장 본문을 쭉 보시면 사울의 엉성한 측면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성경은 필요 없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의도가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달리 엉성한 사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왕은 인간 왕 일 뿐이며 이스라엘이 의지해야 할 참된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해야 할 왕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적용)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통치를 기대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통치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경쟁사회의 시스템 안에 있다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세상의 것들이, 인간들이 고안하고 만들어낸 것들이 우리의 안정과 만족을 보장할 것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것들에게 의지하면 곧 그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사울의 외모처럼 그럴싸 하지만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지 못하는 그 무력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이 고안해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은 암나귀를 찾는 것을 실패하고 찾는 일을 이어나갈 의지도 없는 것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수고하는 목자와 같습니다. 자기의 양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진정한 선한목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연약한 인간인 사울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 23편에 목자로 등장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의지하는 것은 한낯 가축조차도 제대로 간수 못해서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목자로 삼아 따라다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삼아 그분을 좇아야 합니다. 당장은 좀 답답해보이고 당장은 화려하고 풍요롭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만이 우리 삶에 확실하고 견고한 소망을 얻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일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오직 그리도만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참된 복음이 세상에 있는지 그리스도께 있는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을 돌보셔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을 돌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열심히 암나귀를 찾다가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할쯤에 본문에서 이름 없이 등장한 사환이 사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6절에 보시면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우리가 갈 길을 알려줄까 하나이다.”라고 사환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9절에 나오는 선견자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사시대에 선지자는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충고해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선견자는 왕국시대를 지나면서 선지자라는 말로 대체되고 주로 말씀사역을 하는 것으로 그 역할도 확정됩니다. 사환은 사울에게 선견자를 보러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선견자는 다름 아닌 사무엘입니다. 8장 마지막 부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사무엘을 믿지 못해서 왕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최종적인 후보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그런데 이 사울조차도 결국은 다시 돌아 돌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의지할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을 돌봐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왕이 있어도, 뛰어난 지도자가 있어도 사람은 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와 체제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을 돌보셔야 합니다. 8장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의지하고 있지만 결국 그 인간 왕은 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결국 정답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사람의 일을 사람이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셔야 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증명) 어린아이가 좀 자라서 중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부모로부터 모든 간섭을 피하려고 합니다. 부모를 의지 하기보다 자신의 판단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의 일을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어른들도 세상이 만만치가 않은데 막 어린아이의 티를 벗어난 젊은이들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올바로 판단해서 최선의 길을 선택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아니더라도 혹은 성인이 되었더라도 곧 지혜로운 부모를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도 이와 같았습니다. 여태껏 이스라엘이 그 역사가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하나님의 보호와 통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자심감과 그릇된 신념이 그것을 잊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뭔가 잘 모르시고 우리가 세상의 방법을 잘 벤치마킹 하다가 보면 잘 될 것이라고 우리가 하나님 보다 지혜롭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이 결국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사람의 일을 돌보셔야 우리가 어려움을 해쳐나갈 수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결국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를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용) 결국 우리는 돌아 돌아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통치하려고 들다가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 삶의 어려움을 고치려 들지만 결국 우리는 성경 앞에 앉을 수 밖에 없고 기도의 자리에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일을 돌봐달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 씩 우리에게 한계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절망을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내가 좀 경험이 있고 판단력이 있어서 나는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의 두꺼운 벽에 가로막혀 나의 얄팍한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의 모든 예측과 예상이 그저 망상에 불과했고 나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절망을 그냥 절망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이 절망을 양분삼아서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싹 틔워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절망을 양분삼아 하나님 앞에서 소망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일을 내가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되지만 내 일을 하나님께서 돌보실 때 참된 해결방법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돌보시고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람의 일은 늘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을 돌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이끄실 하나님을 붙들며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람의 일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의 일을 돌봐달라고 고백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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