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이 주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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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나라가 주는 소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세상과의 언약에는 소망이 없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세상과의 언약에는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장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대리통지자를 직접 세우시는 부분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왕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만한 왕인가에 대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내일 다룰 본문이지만 12절부터 15절까지는 왕으로서의 사울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0장도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부분이고 11장 12절-15절도 왕을 세우는 부분입니다. 그 가운데 사울이 암몬과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학자는 사무엘상이 한 명이 쓴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헌을 짜깁기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가운데 엉뚱한 내용이 있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자주 말씀드린대로 다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기록한 것이지 사람이 임의로 이걸 짜깁기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신 것을 보여주고 27절에 하나님 세우신 왕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11장에 사울이 전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불만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1장 12절부터는 사울이 전쟁하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사울을 반대하나” 하면서 사울의 입지를 더 공고하게 다져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관된 문맥으로 성경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증명하시고, 백성이 반응하는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에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을 친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만 딱 보면 그냥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못살게 구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이 본문을 영적으로만 해석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으니까 또 외적이 쳐들어오지” 이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면 본문이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암몬은 길르앗 남쪽과 북쪽을 관통하는 무역로를 독점으로 관리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상인들이 지나갈 때 보호비와 통행료를 받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이것이 큰 수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사시대 말에 이스라엘 백성의 도덕적인 타락이 극에 달하면서 여기 지나가는 상인들을 약탈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사기 5:6에 보면 대로가 비어 있고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암몬 족속에게는 상인들을 약탈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굉장한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래서 암몬 사람 나하스가 자기 구역을 정리하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에 와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 나하스에게 ‘우리와 언약’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언약은 단순히 합의를 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절 끝에 우리가 너희를 섬기리라하고 나와있습니다. 암몬이 강하기 때문에 굴복하고 암몬의 지배를 받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다른 나라와 언약을 맺으면 안됩니다. 사사기 2장에 나온 것처럼 다른 민족이 힘이 없어서 언약을 하자고 해도 언약을 맺으면 안되는 상황인데 당장 힘이 없다고 해서 이방나라와 언약을 맺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나라입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그 암몬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의 군사력에 압도되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언약 안에 소망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나하스는 너희 오른쪽 눈을 다 뽑으면 그 언약을 체결해주겠다고 합니다. 한 쪽 눈이 없으면 일상생활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전쟁할 때는 치명적입니다. 활을 쏜다거나 투석기를 쓸 때 한 쪽눈으로는 거리감이 불분명해서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암몬사람 나하스는 이걸 노리고 눈을 뽑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대근동에서 눈을 뽑는 것은 거세를 하는 것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수치를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되신 여호와하나님과의 언약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과 언약 맺고 권력과 언약을 맺으려 했습니다. 죄인의 본성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버리고 세상에게 굴복해서 편안함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잘못된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얼마든지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참된 소망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십니다. 세상은 언약조차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고 언약을 맺더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파기하고 동맹을 깹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댓가로 치르는 한이 있어도 우리와의 언약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을 잠깐 버리고 세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돈이 있고 자원이 있습니다.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죄인의 눈에 세상은 너무나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사역의 장이고 활용하는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풍요와 번영은 있지만 소망은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의 언약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2-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때 소망이 있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때 소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지역에 이 소식을 전달할 전령을 보냅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울었습니다. 사울이 소 두 마리를 몰면서 밭을 갈다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어서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암몬족속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사울이 갑자기 자기가 몰던 소 두 마리를 다 각을 떠서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소의 조각들을 각 지파로 보내게 하여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소도 이렇게 만들 것이라는 말을 전달하게 합니다.
우리가 본문을 언뜻볼 때 사울이 소를 몰던 모습이 참 소시민적이고 겸손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소를 갑자기 해체하는 모습에서 평소에는 겸손하지만 이스라엘을 위해 물불 안가리는 그런 왕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농사를 짓는 일은 모종을 골라 파종하고 날씨와 기후를 파악해야는 등 당시로서는 어려운 기술이 집약된 일이었습니다. 사울이 소시민적인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 자체가 왕으로서 평소에 해야 할 업무였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 이 소는 고가의 재산이었습니다. 농가에 어딜가나 볼 수 있는 그런 재산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소를 해체해서 보냈다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이제 군사적인 상황으로 상황이 바뀌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먹고살 농사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언약을 위협하는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재산을 해체한 것은 이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의 분노가 임한 동시에 이 해체된 소 조각을 본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백성이 당하는 일에 분노하셔서 그분의 군사를 모으셨고 그분의 백성은 이 소집에 두려움으로 임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집을 무겁게 생각한 두려움이었습니다.
9절에 모인 무리가 길르앗 야베스의 전령들에게 말합니다.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해가 더울 때라는 표현이 특이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으셨을 때 해가 더웠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낮잠 자다가 암살당할 때 해가 더웠습니다. 해가 덥다는 것은 사람이 활동하기 힘든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시간을 말합니다. 암몬은 이스라엘 군대가 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물러날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언약을 세상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외면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직분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도록 싸웠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도록 했을 때 그 전쟁에서 승리했고 길르앗 야베스 백성들은 구원의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증명)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그분의 피로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간의 언약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께서 재림하는 날까지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적용)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그분이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 흩어진 죄인들을 모으시고 세상에 결박된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누리도록 하십니다.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세워진 중직자와 봉사자를 통해 이런 사역들이 진행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소흘히 여겨 세상에 눈을 돌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할지 세상을 의지할지 방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세상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보여주고 또 알려주어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그분의 관계가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언약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언약하며 살고 그 안에서 우리의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세상과 관계 맺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이 소망 가운데 기쁨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