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시간 즉시와 잠시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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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본문은 사무엘이 왕을 세운 것이 잘못한 일이라고 질책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라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의 우려대로 사울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는 사울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섬기기를 원하시는 지가 드러납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은 순종의 시간을 좇아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순종의 시간을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사울이 왕이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통치 초반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나서 상비군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을 때 사사들이 군사를 모아가지고 전쟁을 했는데 이제는 직업군인 개념과 유사한 개념의 상비군이 생겼습니다. 사무엘은 삼천 명 정도의 군대를 징집했습니다. 이천 명은 자기랑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했습니다. 남은 백성은 각기 자기 장막으로 보냈습니다.
혹시 사울이 처음 기름 부음 받았을 때 무엇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9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신 이유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울의 사명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블레셋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울이 블레셋과 적극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영토를 지키는 정도지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시간은 바로 순종의 시간입니다. 순종의 시간은 바로 ‘즉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명령하셨으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사울은 이 하나님 나라의 시간을 어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울 군대의 병력과 블레셋 군대의 병력에 대해 설명하는데 사울 군대의 병력은 삼천이고 블레셋 군대의 병력은 병거 삼만에 마병 육천입니다. 주전 1세기에 카르카스 전투에서 반 아시리아 연합군이 보유한 병거가 천대정도 되었으니까 훨씬 더 고대에 삼만의 병거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 문학적인 과장입니다. 삼만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삼천이라는 숫자의 열배로서 그만큼 이스라엘 군대보다 병력이 뒤어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병 육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천은 삼천의 두 배입니다. 이 역시 이스라엘의 군대가 블레셋의 군대보다 훨씬 군사력이 뒤떨어진다는 문학적인 묘사입니다. 실제로는 겉보기에 아주 많은 병거와 마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걸 삼만과 육천으로 많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사울은 왜 그가 받은 사명대로 블레셋 군을 즉시 치지 않았습니까? 왜 하나님 나라의 시간, 순종의 시간인 ‘즉시’를 놓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울이 순종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제 왕이 된지 얼마 안됐는데 무작정 블레셋에게 쳐들어갔다가 왕으로서 위엄이 깎이면 어쩌지 혹시 저 많은 군대에 패배해가지고 왕으로서 인정 받지 못하면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하고 많은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바로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병력을 더 키워서, 조금만 더 준비가 된 다음 폼나게 멋있게 한 번 쳐들어가보자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순종의 시간 즉시를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하나님의 일을 하려 했습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 순종의 시간인 즉시에 맞춥니까? 아니면 나만의 시간을 따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시간, 순종의 시간인 즉시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다음에 시간 있을 때 기도하지, 다음에 될 때 좀 더 섬기지, 다음에 환경이 되면 헌신하지, 다음에, 다음에 가 아니라 즉시 해야 합니다. 물론 한 번에 많은 것을 할 순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즉시의 시간에 따라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역자로 살면 성경과 매우 가까이 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성경과 가깝다고 착각하며 살기에 좋았습니다. 제가 전도사인데, 강도사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설교를 만들거나 성경공부를 준비하거나 하는 일 외에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충격을 받고 나서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기만 하고 또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고 당장 눈 앞에 있는 사역, 설교, 성경강의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나에게 뭔가 문제가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하면 됩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하면 됩니다. 내일부터 잘하지, 다음에 시간 있으면 하지, 여건 되면 하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펼치고 스마트폰 어플을 켜서 바로 읽으면 됩니다. 갑자기 한 시간 두 시간씩 읽으려고 하면 안되니까 단 열장이라도 읽으려 하면 됩니다. 갑자기 열장도 많으면 단 한 장이라도 하려 하면 됩니다. 일단 시작을 하면 됩니다. 즉시 하면 됩니다. 시간은 자꾸 갑니다. 언제 환경이 될 때 여건이 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순간 실천하면 됩니다. 엄두가 안난다고 겁먹지 말고 처음부터 멋있게 하려고 갖추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시간, 순종의 시간 즉시에 맞추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어차피 완전할 수 없습니다. 엉성한 시작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해주셔서 완전한 순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즉시 순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할 때는 즉시로 행동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할 때는 인내해야 합니다. 절대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앞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 하실때는 기다려야 합니다.
3절에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블레셋과 싸우는 것은 사울이 일차적으로 부여받은 사명이고 누구보다 사울이 앞서야 하는데 오히려 그의 아들인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우는 사명을 감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나단이 아버지 대신 참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만큼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그의 사명에 소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을 치고 난 후에 온 이스라엘에 소문이 다 퍼집니다. 4절에 보시면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 이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로 모여서 사울을 따른다고 나와 있습니다. 막상 모여서 보니 아까 말씀드린대로 엄청난 병력의 차이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싸웠으면 좋았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인 숫자에 눌리고 기가 죽었습니다. 6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느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다고 말씀합니다. 7절에 보시면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7절에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사람은 옛날에 이스라엘 사람을 부르는 다른 표현입니다. 히브리는 건너가다라는 동사 아바르에서 나온 고유명사입니다. 히브리 민족들이 홍해를 건넜고 요단강을 건넜기에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굳이 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왜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까? 이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이 있을 때는 홍해를 건너서 애굽에게 승리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와 싸워 이겼는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믿지 않으니까 건너왔던 강을 다시 건너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역행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원래 길갈에서 그 군대가 소집되어서 블레셋과 싸웠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장소였던 길갈에서 요단강까지 건너가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신학적으로 구원역사가 역행된 것으로 본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을 할 왕을 구해달라하고 해서 왕을 줬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 부름 받은 왕인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런 처참한 사태를 낳았습니다.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믿음이지 왕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8절을 보면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을 보고 이런 상황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막 밀리니까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서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정한 시간내에 오지 않았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정해진 시간내에 오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시간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또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고 전쟁이 나고 있는 상황에 시간에 딱 맞춰 온다는 것은 아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사무엘이 늦게오자 사울은 해선 안될 행동을 합니다. 사울이 제사장이 아닌데 사무엘 대신에 제사장 직무를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빨리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지내줘야 백성들이 안심을 하는데, 사무엘이 안오니까 백성들이 흩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때일수록 군사가 똘똘 뭉쳐서 다시 한 번 사기를 진작시켜야 하는데 사무엘이 늦으니까 사기를 끌어올 수 없으니까 자신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대부분의 왕은 제정일치의 그런 왕이었습니다. 정치적인 권한도 가지고 있고 종교적인 권한도 가지고 있는 그런 왕들이 많았습니다. 사울은 아마 그들의 모습을 보며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착각한 것 같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자기가 왕이니까 마음대로 하려 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고 어려울수록 인내하는 것이 참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인내의 시간입니다. 상황이 급박하지만, 당장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뭔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다 앞서선 안되고 인내해야 합니다. 급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마음의 속도를 더 늦춰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순종의 시간에는 즉시 움직여야 하지만 인내의 시간에는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인내의 시간은 ‘잠시’입니다.
즉시 순종하지 못한 사울은 어려움을 겪었고 또 이제는 인내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움직여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 나라의 시간과 어긋나게 행동을 한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기다릴 때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잠시 기도하면서 스스로를 추스르고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 전화를 돌려야 하고 당장 물어봐야 하고 당장 달래서 어떻게든 뭔가 풀어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성질이 급해가지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당장 제가 뭔가 일을 저질러서 눈에 뭐가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시간, 인내의 시간 ‘잠시’를 말합니다. 사울이 잠시만 그 순간 답답하고 어려움을 참았더라면 사무엘이 13절에 말하듯이 사울의 왕조가 영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인내의 시간 잠시를 참지 못해서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당장 내가 일을 저질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시간에 따라 삽니다. 시차가 12시간 차이나는 미국 사람의 시간에 따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시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시간은 순종의 시간 즉시와 인내의 시간 잠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즉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시간에 기다리라 한 시간에는 잠시만 인내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간에 잘 따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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