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말아야 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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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이 떠난 혹은 말씀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말씀과 거리를 둬선 안된다는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1- 말씀이 떠나면 영적으로 무력한 상태가 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말씀이 떠나면 영적으로 무력한 상태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본문은 사울이 블레셋에게 패배한 후에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번제를 드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인내의 시간 잠시를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순종의 시간 즉시를 지키거나 인내의 시간 잠시를 지켜서 살아갑니다. 사울은 이것을 지키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15절에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가게 됩니다. 사무엘이 남아서 사울에게 어떤 해결책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울 대신에 마음에 합한 자를 뽑아서 왕을 세울 것이라 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여기에 대한 사울의 반응은 딱히 뭐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그가 아마 애통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보였다면 회개했더라 후회했더라 하고 기록을 했을텐데 별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 사울이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상황이 오는데 그 때는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그 회개는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어쨌든 비슷한 장면에서 어떤 장면에 회개가 있고 어떤 장면에는 회개가 없다면 회개가 없는 장면에서는 회개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생략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사울은 그가 최초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사무엘의 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곤란을 당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사무엘이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무엘이 떠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왕을 교훈하고 백성들을 교훈하는 선지자 역할을 합니다. 12장 23절에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길로 인도할 것이라 이야기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나라의 대리통치자인 왕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또 영적인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길, 의로운 길로 안내하는 안내자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이 길을 알려주지 않고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무엘이라는 사람이 떠난 일일 뿐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방편이 사라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끊임없이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교훈하시지만 계속해서 그것을 따르지 않으려 하고 거절하려고 하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서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거절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말씀이 어떻게 이해가 되고 묵상이 되겠습니까? 말씀은 끊임없이 회개하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자에게 선하고 의로운 길이 되어줍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예수님께서 치리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권고하고 권고해도 안 돌아오면 두 세 증인의 이름으로 확증하고 그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이야기 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이 가서 권면을 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씀으로 권면해도 듣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불순종하는 자를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이 사울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보니까 육백 명 가량입니다. 13장 2절에 보면 사울의 군대가 3천명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육백명 가량 남았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에게 대패하고 사울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 위상이 떨어지니까 남은 군사가 육백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제일 처음 전쟁을 수행할 때 삼십삼만 명이 모여 암몬 군대에 맞섰다고 11장 8절에 말씀합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숫자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떠나는 순간 우리는 무기력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순종하거나 기다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필시 무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떠난 성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보다 더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말씀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능력있는 신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떠나면 사울의 군대가 해체된 것처럼 무기력해집니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은혜가 내릴 때 이중적인 차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비처럼 내리는데 그것을 흡수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그 은혜를 흡수하지 못하고 흘려 보내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은혜의 비가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말씀이 없으면 무력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관통할 때론 아프고 힘들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주저 앉아 버리고 말씀이 우리 삶을 관통하는 것을 막는다면 말씀이 우리 심령에 파고드는 것을 거절한다면 마치 말씀이 우리를 떠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기기 시작하고 우리는 능력있는 신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33만명이 6백명이 되는 일이 생깁니다. 말씀을 붙들어 말씀이 내삶을 떠나지 않고 말씀이 능력이 되고 나의 군사가 되고 나의 무기가 되는 삶을 추구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투자하고 우리의 열정과 관심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PT를 받고 필라테스를 수강하지 않습니까? 보디 빌딩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몸을 세워나가기 위해 엄청난 물질적, 시간적, 물리적인 투자를 합니다.
육신을 세우는 보디 빌딩도 이런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그리스도의 몸을 빌드 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말씀으로 치열하게 사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의 영혼이 세워집니다. 말씀이 무겁고 자꾸 나를 찌르고 숨이 턱턱 막히게 하더라도 그 과정을 견뎌야 우리의 신앙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서 힘이 있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신앙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말씀이 있는 신앙생활이 능력있는 신앙생활이 됩니다. 말씀에서 떠나면 능력이 없습니다. 무장해제가 됩니다.
2- 말씀이 떠나면 영적으로 얽매이는 상태가 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말씀이 떠나면 영적으로 얽매이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들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근본이 반 유목민입니다. 목축을 통해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농사를 짓긴하지만 목축을 하는 것만큼 잘하지 못하고 농사에 쓰이는 농기계도 완전히 철기로 바꾸지 못한 그런 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블레셋 민족은 철기를 제련하는 기술을 터득하여서 철 농기구, 철제무기가 보급되는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그 역사가 계속 반목하고 부딪혔던 역사라서 블레셋의 철 제련 기술이 이스라엘로 넘어왔을 법한데 어쨌든 그런 기술이 이스라엘에는 전파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블레셋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적인 방식으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설프게 세상을 따라하다가 뒤쳐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을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겐 철제 농기구나 날카롭고 튼튼한 철제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에서 결실을 거두어야 합니다. 전쟁을 이기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21절을 보면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라고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성경들을보거나 새번역 성경을 보면 이부분이 약간 다른 관점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번역을 했는지 보니까 “괭이나 삽이나 삼지창 도끼나 쇠채찍 등을 벼리는데 삼분의 이세겔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철기나 금속을 벼리는 기술이 없으니까 그걸 블레셋 사람들이 해주는데 그 가격을 삼분의 이세겔이나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9장에 선지자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쓰이는 예물이 은 사분의 일 세겔입니다. 그러니까 그 철쪼가리를 좀 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날카롭고 튼튼한 첼제 기구, 블레셋이 갈아주는 기구를 더 믿었습니다. 세상의 능력을 더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격이 엄청납니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블레셋에게 얽매여 있는 상태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영적으로 블레셋에게 매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자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온전히 쓰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사용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니까 세상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말씀을 떠나니까 영적으로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이 그들을 착취해도 속수무책으로 착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에너지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 에너지로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겼으면 오히려 삶이 더 영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했을텐데 세상을 닮고 세상을 따르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니까 피폐함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블레셋에 막대한 돈을 주고 그 기술의 혜택을 사들였지만 22절에 보듯이 정작 전쟁이 날 때는 철제 무기가 고작 두 명에게 밖에 없었습니다. 왕인 사울과 그 아들인 요나단에게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블레셋이 병거를 삼만을 만들 때 고작 칼 두자루 혹은 창 두 자루 정도만 갖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버리고 영적으로 얽매인 댓가가 고작 이런 것입니다.
(적용)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서 벗어나 세상을 신뢰하면 결국 세상에 얽매이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일반적인 은총으로 세상에 있는 혜택을 우리에게 베푸시지만 우리가 말씀을 떠나 거기에 영적으로 예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것을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세상에 얽매이면 세상에게 자꾸 우리의 에너지와 힘만 빼앗기고 얻는 것은 하나도 없이 세상에게 패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뿐입니다. 말씀에서 벗어나 세상에 얽매이면 반드시 패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세상에게 예속되고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문화에 얽매이기 보다는 말씀의 원리에 내 삶을 헌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 얽매이고 이웃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에 헌신하게 되어 세상이 감히 결박할 수 없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면 우리는 결국 영적으로 힘을 잃고 세상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부디 말씀을 붙들고 영적인 힘을 날마다 더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이 결박하지 못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