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뜻을 구하라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2 viewsNotes
Transcript
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사명 감당하라고 은혜 주신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오늘 본문은 과연 사울이 은혜 받은 것만큼 사명을 다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것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전투를 한 후 이번에는 아말렉과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1절에서 4절까지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지난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마음대로 제사를 지내는 바람에 사무엘이 떠나고 말씀이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사울에게 기회를 주시고 다시 그분의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15장 1절에 사무엘이 다시금 사울의 소명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 받아서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세력을 모아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왕의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 왕이 된 것도 아닙니다. 사울이 왕이 된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방침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왕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2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당시에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에 대해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여호수아를 필두로 해서 아말렉에게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걷는 구원의 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아예 그 족속을 멸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에 그분이 기름부어 세운 직분자를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에는 2절에 따른 구체적인 지침이 등장합니다. 2절은 구원역사를 막은 죄로 아말렉을 벌하라는 내용이고 3절은 모든 소유를 다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합니다. 남녀 소아 젖 먹는 아이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모두 전멸시켜야 합니다. 이 전쟁 방법은 헤렘이라고 해서 그 땅에 있는 것들을 다 멸절시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 어떻게 하나님이 아기까지도 저렇게 진멸하라고 하시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한 하나님이신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을 괴롭힌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1절부터 3절까지 사울이 왜 왕이 되었는지, 아말렉을 왜 쳐야 하는지, 어떻게 쳐야 하는지 그 내용들이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구체적인 행동강령까지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울은 이대로 순종해서 전쟁을 하면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는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멸절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대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모든 백성을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하는데 아말렉 왕 아각을 남겼습니다. 가축 중에서 좋은 것들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놓고서는 그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에 담긴 신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혹은 다른 나라로부터 자원을 탈취하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멋 옛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한 아말렉이라는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구원 받는 것을 방해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두려운 심판 뒤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복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런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니까 다른 나라랑 싸워서 이겨야지, 내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한 번 보여줘야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 아말렉이 이스라엘 괴롭혔으니까 본때를 보여줘야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이런 군사,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이고 구원역사적이고 복음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본문에서 사울이 했던 실수는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단을 통해 묵상의 자리에서 말씀을 하셔도 그것을 내 욕망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고관대작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뭄으로부터 구원해서 구원역사를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이웃의 필요를 위해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우리 자녀들한테 무조건 출마해서 요셉처럼 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을 잘못이해하니까 자꾸 21세기의 교회 신자인 국무총리를 요셉에 비유합니다. 애굽의 국무총리는 점을 쳐서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베냐민 짐꾸러미에 숨겼던 요셉의 술잔은 물에 기름을 둥둥 띄워서 기름 점을 치는 무속도구입니다. 애굽의 총리는 그런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 자리에 올라간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감당한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욕망대로 읽으니까 엉뚱하게 성경을 읽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바로 읽기 위해서 강단을 통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신학교가 있는 이유는 교단의 공식적인 성경가르침을 가르칠 수 있는 사역자를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역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 사역자와 함께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개인의 잡념과 욕망을 배제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사울이 그게 안 되서 오늘 본문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올바른 이해만이 정확한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올바른 성경 이해만이 정확한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아각왕을 죽이지 않았고 자기가 보기에 좋은 가축을 남겨뒀습니다. 이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이 보는데서 아각왕을 굴복시켜서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왕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 좋은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취해서 자기가 치른 전쟁이 얼마나 대단한 전쟁이었는지 보여주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전쟁을 통해서 부와 풍요를 가져다줄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순종안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대충 대충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용해서 전쟁에서 이겨서 대단한 왕으로 보이는 것까지였습니다. 모든 것을 진멸했을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메시지와 사역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인질을 잡고 전리품을 취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자기 욕망 때문에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제대로 된 순종도 하지 못합니다. 9절에 보시면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즐겨 아니한다는 말에서 즐기다 라는 동사 ‘아부’는 주로 직무에 사용됩니다. 재미나 유희거리가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직무, 어떤 의무를 기쁘게 감당한다고 할 때 쓰는 동사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서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가 기쁘지 않습니다. 기쁘지 않으니까 자기가 기쁜대로 하나님의 직무를 태만하게 수행하여 불순종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기쁘지 않아서 자기가 좋은대로 판단해서 좋은 가축은 남기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합니다.
(적용)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이 사울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하나님의 뜻이 기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뜻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아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떤 열정이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된 열정은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 뜻으로 포장해서 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냥 겸손하게 가만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닙니다. 잘못된 겸손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나태함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을 안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해서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의 열정이나 나의 욕망이나 인간적인 생각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인 성경 말씀이 나를 이끌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순종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만 움직여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순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강단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 묵상을 통해서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나를 이끌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내 뜻을 말씀에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을 꺽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과는 다른 것을 알고 찔림이 있고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한 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