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세상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3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말씀에 불순종할 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교훈이 세상은 만만하다라고 하는 것이면 좋겠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자신의 욕망만 따르는 세상나라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늘 대항하는 나라입니다. 블레셋 에베스담밈이라는 곳에 진을 칩니다. 에베스담밈은 피들의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레셋이 피들의 골짜기에 있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열을 벌였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병력과 블레셋의 병력이 비등비등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진을 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등비등한 상태에서 블레셋은 심리전을 걸어옵니다. 4절에 보시면 블레셋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다고 합니다. 성경인물중 너무나 유명한 골리앗이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입니다. 여섯규빗 한 뼘은 3미터 정도 됩니다. 고대의 어떤 번역본은 2미터 정도로 이야기 합니다. 성경은 문학이라는 양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숫자를 기록할 땐 상징적인 의미에서 혹은 과장법을 더해서 기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골리앗의 키가 3미터인지 2미터인지 그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숫자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골리앗은 딱 보기에 아주 키가 크고 두려움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대인들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 지금 기준으로 봐도 키가 큰 골리앗을 보고 더 기가 죽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큰 키에 대한 묘사로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아닙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습니다. 몸에는 비늘갑옷을 입었습니다. 비늘갑옷은 빈틈없이 몸을 가려주는 동시에 활동을 용이하게 해주는 갑옷입니다. 다리에도 놋 각반을 찼습니다. 엄청나게 길고 무거운 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어가 철저하고 길이가 긴 창을 가지고 있어서 창과 갑옷을 뚫고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다가 골리앗을 위해서 방패를 든 사람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무장한 골리앗이 방패를 든 사람 뒤에 딱 자리 잡고 있습니다. 누군가 골리앗을 공격하려고 하면 방패 든 사람을 상대해야 하고 그 방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 때 골리앗은 긴 팔을 이용해서 긴 창으로 푹푹 찌르면 싸움은 대번에 끝이 날 것입니다. 만약에 고려시대 최고의 무사인 척준경 같은 사람이 방패를 든 자를 한 번에 제압한다고 해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무장하고 있는 골리앗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골리앗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을 도발합니다. 8절에 나는 블레셋 사람인데 너희 사울 심복 아니냐 한 사람 선택해서 내게로 내려보내라 일 대 일로 한 번 붙어보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이기면 이스라엘이 골리앗의 종이 되고 이스라엘의 대표자가 이기면 블레셋이 종이 될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골리앗이 제안한 것은 고대에 그리고 중세시대까지도 종종 행해지던 일기투라는 형식의 전투입니다. 양쪽 진영에서 대표자가 한 명씩 나와서 서로 싸우는 형식의 전투입니다. 양쪽의 군사들이 희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면서 일기투에서 이기면 이긴 쪽의 진영의 사기가 극도로 올라가서 전쟁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이 일기투를 제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심리적으로 굉장한 압박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 일기투에 나가면 반드시 질 것처럼 보입니다. 저렇게 크고 강한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일기투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는 골리앗 같은 장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고 골리앗이 두려워서 피하는 꼴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점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블레셋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세상 나라를 의미합니다. 세상 나라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욕망에 이끌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나라들과 같은 왕을 세우고 싶어해서 사울왕을 얻었습니다.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난 왕 딱 봐도 군주의 모습을 가진 그런 왕을 원해서 사울 왕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울보다 키가 더 큰 사람 사울 보다 더 위엄이 있고 위협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니까 사울 왕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게 보입니다.
세상 나라는 만만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방의 왕들처럼 보이는 외모를 지닌 왕을 추구하니까 골리앗이 자신의 거대하고 무서운 외모로 이스라엘을 압박합니다. 세상이 우습고 만만해서 신앙생활이 참 쉬웠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무서워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잘 압니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 끌리고 어떤 부분이 약한지 잘 파악하고 그 점을 노려서 우리를 도발하고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가 물질의 유혹에 잘 흔들리는 것을 압니다. 인간관계에 흔들리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가 예배에 버금가도록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우리가 연약한 부분을 잘 알고 골리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노예 삼으려고 호심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2-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임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불순종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있고 순종을 잘하는 상태였더라면 골리앗의 도발에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과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그가 블레셋을 죽이기 위한 왕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몇 번을 제외하고 항상 자기가 좋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한 근본원인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불순종하는 사울은 세상 나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울자체가 세상 나라의 왕이 되고 싶어하고 세상을 닮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사울이 세상에 속하는 순간 세상에서 더 큰 힘을 지닌 세상나라에게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세상에 대해 담대하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이 두렵습니다. 실은 사울의 관심은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위 자체에만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골리앗이 지금 사울에게 하는 도발은 일기투에서 지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노예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울의 성격 같았으면 내 백성, 내 나라인데 니가 뭔데 건드리냐 이겁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두려우니까 세상이 두려우니까 가장 중요한 지점을 건드려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원리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의 나라처럼 되고 싶고 세상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을 닮아봤지만 세상처럼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게 겁먹고 세상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세상에게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세상을 닮으면 세상이 주는 것으로 충만하고 풍족하고 잘 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두렵게 하고 세상이 휘두르는 폭력적인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처합니다. 이것이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내 마음대로 하면 좀 자유롭고 행복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렵기만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두려워 했으면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참되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두려워 했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 해야할 참된 두려움이 없으니까 블레셋을 두려워하고 골리앗이 무섭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놀래킬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차라리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10절에 보시면 골리앗이 “내가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했으니 사람을 보내서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듣고 화가 난 것이 아니라 11절에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왕이 되고 나서 암몬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의로운 분노를 발하던 사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세상에 속해서 세상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끼는 불신앙의 모습만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을 닮아 세상에 속해있으면 세상의 것이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닮으면 세상 속에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결국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돈 때문에 더 고민하고 돈 때문에 죄의 유혹에 더 많이 시달리고 돈 때문에 두려울 일이 많이 생깁니다. 돈이 기준이 되면 돈 때문에 힘들 일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부가 삶의 기준이 되면 공부 때문에 힘들 일이 많습니다. 승진도, 명예도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준이 되면 그것 때문에 힘든 날이 옵니다. 세상이 기준이 되면 세상에서 힘들고 두려운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두려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되게 두려워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따르니 세상을 두려워할 일이 생깁니다. 만약에 참되게 두려워 해야할 것을 두려워 했다면 세상 따위는 전혀 겁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한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세상의 원리에 굴복해서 살면 다 편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 더 이상 세상을 두렵지 않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해야 하는지 깨닫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대해 담대한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록 세상이 만만치 않지만 하나님이라면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두실 때 우리에게 세상을 감당할 힘과 능력 주심을 믿고 나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